‘세월호 이후 한국문학’ 등 세월호 10주기 특집
최원식 교수 ‘한국현대문학사 연습’ 연재 시작
소월 최승구 노트, 할머니의 전쟁 체험 비롯
기록문학·비평·시와 소설·아동문학·서평 실려
어둠이 쏟아지는 의자에 앉아 있다. 흙 속에 발을 넣었다. 따뜻한 이삭. 이삭이라는 이름의 친구가 있다. 나는 망가진 마음들을 조립하느라 자라지 못하고 밑으로만 떨어지는 밀알. 어둠을 나누고 있다.
이영주 시인의 시 ‘연대’ 전문이다. 시집 ‘어떤 사랑도 기록하지 말기를’(문학과지성사·2019)의 마지막 시편이기도 하다. “어둠을 나누고 있다”는 이 시의 마지막 문장에서 ‘어둠’이란 표현은 단순히 빛에 대비되는 것을 가리키는 의미일까.
김태선 문학평론가는 계간 웹진 ‘작가들’ 2024년 봄호(통권 88호)에 쓴 ‘그날 이후, 서로의 어둠을 나는 깊은 일-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문학의 흐름’에서 이 어둠은 몇 마디 말로 단순하게 가리킬 수 없는 깊은 무언가를 이른다고 했다.
깊은 바다로 침전한 “어둠이 쏟아지는 의자에 앉아” 그 어둠을 함께 나누는 이는 “따뜻한 이삭”이다. ‘이삭’은 곡식의 낟알이나 과일 등 열매를 가리키는 표현이기도 하고, 기독교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이기도 하다. 2014년 4월16일 그날, 다시 돌아올 수 없게 된 한 사람의 이름이기도 하다.
김태선 평론가는 이 시의 목소리가 스스로를 일컬어 “자라지 못하고 밑으로만 떨어지는 밀알”이라 했듯, 그날과 그날 이후 “망가진 마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함을 고백하지만, 다만 그 곁에서 함께 쏟아지는 어둠을 맞으며 “어둠을 나누”며 곁에 있고자 한다고 봤다.
그는 “그럼에도 고통받는 존재 곁에 함께 자리해 그 목소리를 듣는 일, 그에 관해 침묵하지 않는 일은 문학의 중요한 덕목이자 책무 가운데 하나”라고 했다.
인천작가회의가 발행한 계간 ‘작가들’ 2024년 봄호는 세월호 10주기 특집으로 세월호와 함께한 이들의 글을 실었다.
‘304낭독회’ 일꾼으로 활동했던 김태선 평론가는 이영주·안현미·진은영·이영광·김현의 세월호에 관한 시와 황정은의 소설을 읽으며 “남은 전 생애로 그 바다를 견디”며 어둠을 나누는 깊은 일을 이어가자는 염원을 이번 글에 담았다. 304낭독회는 세월호 희생자 304명을 기억하고자 시민과 작가들이 만든 모임이다.
‘기억의 걸음들로 함께 새긴 4·16 세월호 참사’를 쓴 오시은 작가는 ‘세월호 기억의 벽을 지키는 어린이문학인들’ 활동 10년을 서명운동, 릴레이 단식, 한 뼘 그림책, 기억의 벽 등으로 정리했다. 4·16연대에서 활동하고,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조사관으로 일하기도 했던 은하는 자원 활동부터 세월호 참사 대학생 연대체, 사회적참사 특조위 활동까지 이어진 시간을 회상하는 글 ‘각자의 삶 속에 노란 리본을 달고’를 썼다.
이번 호에는 한국문학계의 수장 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의 기획연재 ‘한국현대문학사 연습’ 1회도 실렸다. 최원식 교수는 이인직-최남선-이광수로 정통을 삼는 기존 문학사의 구도를 비판하면서 연재를 시작한다. ‘작가들’ 이재용 편집주간은 “반성 없이 받아들인 통념을 날카롭게 분리하고 유유히 회통하는 치밀한 분석의 회로가 어떠한 ‘연금술’을 보여줄지 기대하는 마음을 감출 수 없다”고 했다.
비평란에선 소월 최승구의 노트를 새로 교정·교열해 실었다. 창작란엔 문계봉·고철·손병걸·금희·김누누·김민지·박참새·이실비의 시와 유채림·최지애의 소설을 띄웠다. 장세경·임복순의 동시, 임정자의 동화도 읽을 수 있다. ‘우현재’에는 민통선에 위치한 교동도를 다룬 문학 작품들을 소개하고, 민중구술로 인천여성가족재단의 ‘인천여성 생애구술사’ 중 임인자 할머니의 구술이 실렸다.
계간 ‘작가들’ 홈페이지(webzinewriters.com)에서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