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惡 사용해도 된다'고 말하지 않아
도덕적 관념 크게 벗어나는 후보
과감하게 떨어뜨리는게 유권자 몫
누가 진정한 주인인지 보여줘야
다행히 최근에 국내의 마키아벨리에 대한 연구가 축적되면서 마키아벨리의 본래 의도가,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사용해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공적영역에서 공공선을 위해서 불가피하게 통상적인 도덕의 기준을 넘어서는 행동도 용인될 수 있다'는 주장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도 많이 늘었다.
최근 부쩍 관심이 늘어난 막스 베버도 알고 보면 마키아벨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베버는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인이 갖춰야 할 윤리를 신념(절대)윤리와 책임윤리로 구분하는데, 신념윤리는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 의도의 순수성을 추구하고, 반면에 책임윤리는 의도보다는 결과에 주목한다. 베버는 여기에서 책임윤리를 강조한다. 정치에서는 반드시 선한 것이 선한 것을, 악한 것이 악한 것을 낳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신념윤리를 추구하다가 나쁜 결과를 초래한 정치인은 결코 책임을 면할 수 없다.
하지만 베버나 마키아벨리의 의도는 일의 결과를 책임지는 정치인의 자세를 강조하는 것이지 결코 신념윤리나 도덕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또는 별다른 이유 없이 악을 행해도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소명으로서의 정치'도 자세히 읽어보면, 베버가 책임윤리 못지않게 신념윤리의 중요성도 강조하면서 양자를 균형 있게 추구하라고 말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도덕적 순수성을 추구하다가 일을 그르치는 것도 문제지만, 도덕과 원칙이 사라진 정치는 삭막한 황야나 정글과 다름없다.
22대 총선이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총선 공천과정도 논란이 많았다. 과거 행적이나 발언으로 공천이 취소되는 경우가 몇몇 있기는 했지만, 공천을 받은 후보들 중에 국민의 통상적인 도덕 관념과 눈높이에 벗어나는 사람들이 여전히 눈에 많이 띈다. 그러나 공천에 책임 있는 인사들이나 열성 당원들은 총선 승리와 상대방 심판이라는 명목상 이유를 내세우면서 애써 이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대통령이나 당대표를 어떻게든 보호하고 자신들의 정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서 이런 국민을 무시하는 행태를 보이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마키아벨리나 베버는 결코 목적 달성을 위해서 사람들의 이목을 신경쓰지 않고 악을 사용해도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정치인은 인간의 평균적 결함을 고려하는 만큼 평균적인 도덕성도 고려해야 하는 숙명을 가진 존재다. 평균적인 도덕성으로부터 지속적으로 벗어나는 정치인을 유권자들은 속물로 여기고 결국 신뢰를 거둔다.
레비츠키와 지블랫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선거를 통한 '선출된 독재자'가 등장하는 배경에는 문제가 있는 후보를 걸러내지 못하는 정당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 정당들도 이런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쨌든 이제 선택은 유권자의 몫이다. 우리 정치가 조금이라도 나아지기 위해서는 후보의 면면을 세밀히 살펴서 국민의 도덕관념에 크게 어긋나는 후보는 과감하게 떨어뜨리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정치가 혼탁해지고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상황에서는 누가 진정한 주인인지 국민이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신철희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