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까지 광주 호랑가시나무아트폴리곤 개최
3년 수집한 작가 자신 머리카락 소재 작품화
소멸해가는 머리카락-사물 연결, 관계 맺기
“깨끗함과 더러움의 분별은 어디서 오는가”

인천 강화도에 거주하며 창작 활동을 펼치고 있는 설치미술가 한희선이 광주광역시 복합문화공간 호랑가시나무아트폴리곤에서 개인전 ‘불구부정(不垢不淨) : 먼지가 되어가는 중이었다’를 열고 있다.
한희선 작가는 존재의 흔적을 통해 모든 존재가 서로 연걸돼 있음을 주제로 작업하고 있다. 녹, 먼지 등 주로 버려지거나 낡고 쓰임이 다한 비천한 재료와 연약하고 부드러운 소창천을 치유의 상징으로 다룬다. 두 매체가 가지는 극명하게 대조되거나 상호 순환적 흔적 표현에 천착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신체 일부인 ‘머리카락’을 소재로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머리카락이라는 다소 혐오스런 매체를 통해 우리의 관념이 얼마나 상황에 따라 변화하고 있는지 작품을 통해 소통하고자 한다고 작가는 설명했다. 작가는 2021년부터 자신의 머리카락을 관찰하고 수집하며 전시를 구상했다.

머리카락을 작은 공처럼 뭉쳐 전시장을 빙 둘러 설치했다. 다양한 형태로 말거나 꼰 머리카락을 액자에 전시하거나 돌에 묶어 매달거나 전시장 구석에 하나의 오브제로 배치했다. 작가의 머리카락은 하얀 원피스를 피부로 삼은 듯 달라붙어 있기도 하고, 회화의 일부로 결합하기도 했다. 미디어아트로도 표현됐다. 머리카락에 대한 시선과 관점의 변화를 꾀해 미와 추, 더러움과 깨끗함의 경계를 허물고 전복하는 실험적 작품을 내놨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완전하고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몸’으로부터 버려지고 소멸해 가는 신체 일부인 머리카락을 매개로 주변의 다양한 사물과 연결하거나 관계를 맺게 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축을 옮겨 보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다. 전시명이기도 한 ‘불구부정’은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다는 뜻으로 공(空)사상이 담긴 대승 불교 경전 ‘반야심경’에 나오는 구절이다.

작가는 “방금 전까지 나의 일부였던 머리카락, 손톱, 피부 조직 등은 떨어져 나가는 순간 불결한 쓰레기로 취급된다”며 “깨끗함과 더러움의 분별은 어디서 오는 것이며, 우리는 왜 이런 상황을 맞을 때 전도되는 것인지 탐구하게 됐다”고 했다.
한희선 작가는 지난 1월부터 2개월 동안 광주광역시 양림동에 있는 호랑가시나무창작소에서 레지던시 작가로 활동했다. 창작소 옆 아트폴리곤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레지던시 결과 보고전이기도 하다. 호랑나무가시창작소는 언더우드 선교사 사택의 차고로 쓰였던 10평 남짓 공간이었는데, 문화예술기획사 아트주가 원래 구조를 그대로 살리면서 증축해 현재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작가는 호랑가시나무창작소가 있는 양림동 근대 역사 거리와 전시 장소인 옛 선교사 사택의 역사성과 고유성에도 관심을 기울이면서 직접 수행하고 탐색하는 과정을 거쳐 작품화했다. 작가의 직전 전시인 ‘[전시리뷰] 김승현·한희선 작가의 2인전 : 면면이 면면히’(2023), ‘[전시리뷰] 한희선의 설치미술전 : 사이흔적, 간섭’(2023)과 비교해도 좋을 것 같다. 이번 전시는 오는 31일까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