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이지 않은 그녀와의 수업
주변 배려로 별일없이 학기 마쳐
개강하고 새로운 지도학생 배정
이해하고 심판 않고 관심 갖는다
다시 한해를… '너'도 그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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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하 안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민교협 회원
첫 주 수업부터 그녀는 눈에 띄었다. 보편적이지 않았다는 의미다. 모두가 웃을 때 웃지 않았고, 모두가 웃지 않을 때 웃었다. 그녀는 수업 중 교실을 나가거나, 조용히 수업을 듣다 갑자기 소리를 지르거나, 어느날은 아이처럼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다르다'는 감각은 어찌나 쉽게 드러나는지 몇 주 지나지 않아 그녀와 나머지 학생 사이에는 금이 그어졌다. 교사는 차이를 품을 수 있어야 한다든지,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도록 하는 교사의 태도는 함께 공부하는 동기들과의 관계에서부터 연습되어야 한다든지와 같은 '말'로는 이미 그어지기 시작한 금을 지울 수 없었다. 학생들은 그녀에게 모진 말이나 행동을 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친절하지도 않았다. 주변이 함께 웃고 함께 쉬고 함께 토론하는 동안 그녀는 외딴 섬 같았다.

우린 총 3번의 수업을 함께 했다. 첫 번째 수업에서는 복학생 선배들과 그녀를 한 조에 배정했다. 그녀는 토론에서 곧잘 말했고 그 학기는 크게 어렵지 않게 지났다. 두 번째 수업에서는 과대표와 그녀를 같은 조에 편성했으나 그 학기는 명백히 실패했다. 과대표를 뒤에서 조용히 지원하겠다던 내 방식도 실패했고, 그러니 과대도 한 사람의 몫을 온전히 해내지 못하는 그녀를 참지 않았다. 우리 셋의 실패와 그로인한 각자의 열패감은 그대로 뉘앙스가 되어 함께 강의를 들은 학생들에게도 전달됐다. '다른' 학생 한 명을 '우리' 안에 받아들이는데 실패한 셈이고 그 현장을 학생들은 고스란히 목격한 목격자이면서 어찌해 볼 수 없는 방관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선생인 내가 실패함으로써 학생들을 열패감의 공범으로 만들었다. 모두가 내상을 입었다.

"누구에게나 기준이 있고, 그 기준을 벗어나는 이를 볼 때 우린 불편하다. 나와 같거나 달라 불편한 강의실 안 그를 우린 어떻게 대할 것인가. 그 방식이 그대로 자신의 교실에서 재현될 테니 우린 좋은 교사가 되기 전에 좋은 동료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 마치 이 사안의 책임은 너희에게 있다는 것처럼 말하던 어느날 문득 알게 됐다. 이 말을 성실하게 수행해야 할 사람은 학생들이 아니라 선생인 나였다. 우애와 연대는 말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몸에 익는다. 학생들의 관계에 직접 개입하는 것이 오히려 관계를 어렵게 할까봐, 드러나게 관심 갖는 것이 오히려 부담될까봐 알면서도 모르는 척, 직접 말하는 대신 간접적으로, 앞에서 논의하는 대신 뒤에서 부탁했으니 결국 하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셈이었다.

마지막 졸업 학기, 전공 수업에서 우린 다시 만났다. 수업 자료를 그녀에게 주고 동료들에게 나누어 주길 부탁했다. 그녀가 토론하고 있는 조에 머물거나 그녀의 생각은 어떤지, 그녀의 생각에 대한 다른 조원의 생각은 어떤지 물었다. 쉬는 시간, 그녀의 근황을 묻거나 강의가 끝난 뒤 귀갓길에 함께 하며 대화를 나눴다. 한달에 한 번은 함께 식사를 했다. 그녀는 갑자기 슬퍼지면 엉엉 울게 되고 그 순간은 주변의 누구도 자신을 도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매 학기 잘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는다.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없어도 괜찮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본 아기들은 귀여웠으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니 선생님이 되긴 어려울 것 같다고도 말했다.

그녀는 별 일 없이 학기를 끝냈다. 조원의 배려로 팀 작업도 마무리했다. 그러나 여전히 교실 안에서 그녀는 혼자였고, 학생들은 그녀를 없는 셈 쳤다. 여전히 여러 장소에서 갑자기 소리지르거나 큰 소리로 울었다. 그녀는 도서관에서도 울고 길을 걷다 캠퍼스에서도 울었다.

개강을 했다. 신입생이 들어오고 새로운 지도학생이 배정됐다. 학생들은 여전히 고투 중이다. '우리는 이해한다', '우리는 신뢰한다', '우리는 심판하지 않는다'. '우리는 공유한다', '우리는 관심을 갖는다'. 우연히 읽은 문장이다. 이해하고 신뢰하고 심판하지 않으면서 공유하고 관심을 갖는다. 무엇이 변화되는 것인지, 변화해야 하는 것은 누구인지 여전히 알 수 없지만 다시 한 해를 산다. 살아야 한다. '너'도 그랬으면 좋겠다.

/김명하 안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민교협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