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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오후 경기도청 한 회의실에서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전세피해 대책마련 토론회가 진행됐다. 2024.3.27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각 분야 12명 참석… 임대·임차인간 권리 균형점 의견 엇갈리기도
볼리비아·싱가포르 등 해외 사례 공유… 道, 상·하반기 대응 준비


윤성진/국토연구원 연구위원
사기 아니라도 임차인들 불안한 구조
작년 상반기 49만가구 반환 지연 위험

박은성/한국공인중개사협회 연구원
전세권 등기 의무화 과도한 조치 우려
소유권 제한 측면서 신중한 검토 필요

이철빈/전국전세사기 대책위 공동위원장
피해자, 관리비 미납땐 기본생활 제한
문제 다수 조례 재·개정으로 해결 가능

이계삼/경기도 도시주택실장
부분적 조치들 폭 넓은 혜택 검토 할것
큰 틀의 경제질서 위한 제도 개선 동의


"전세사기와 관련해 매우 중요한 분들이 모두 모인 소중한 자리입니다. 피해 지원과 예방을 체계적으로, 제도적으로 강화할 길을 함께 찾아갑시다."

반복되는 전세사기 피해를 뿌리 뽑기 위해 경기도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전국 지자체 중 처음으로 각계 전문가들을 한데 모아 대책을 논의하는 민관 협력 토론회를 주최한 것이다. 도는 단발성 행사를 넘어 연내 다수의 전문가 그룹 토론회를 진행하고, 논의 결과가 반영된 전세사기 피해 '예방' 대책을 발표하겠다는 방침이다.

도는 지난 27일 오후 1시30분께 경기도청 15층 대회의실에서 '전세피해 대책 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열고 2시간가량 다양한 의견을 모았다. 이번 토론회는 전세사기 피해를 둘러싼 제도적, 사회적 미비점들을 전문가들과 함께 짚어보고 근원적 예방책을 모색하겠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도청 도시주택실과 도의회 도시환경위원회를 비롯해 학계, 법조계, 연구기관, 피해자대책위원회와 공인중개사협회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전세사기와 관계된 전문가 12명이 토론에 참석했다. 언론에서는 지난해 경기지역 전세사기 심층기획 '시그널-속빈 전세들의 경고'를 보도한 특별취재팀 김준석 경인일보 기자가 토론자로 배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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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회는 먼저 윤성진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의 '보증금 미반환 구조의 이해' 발제로 시작됐다. 윤성진 연구위원은 2021년 말부터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례들을 직접 조사해 국내 최초로 전세사기 피해 유형을 정리한 연구자료를 바탕으로, 다양한 전세사기 피해 양상과 구조적 문제점 및 대책에 관한 제언 등을 공유했다.

발제에 따르면 2022년 경찰청이 구분한 전세사기 유형만 7가지에 달하고 각각의 방식이 나날이 고도의 치밀함과 조직적 움직임으로 전개되고 있다.

윤성진 연구위원은 "임대인이든, 건물주든, 금융권이든, 조직적 전세사기의 총책과 각각 역할만 달라질 뿐이지 어느 쪽 하나 믿을 것 없는 구조로 사기가 벌어지는 양상이다. 형사상 사기가 성립되지 않더라도 임차인은 매사 일상적인 불안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그러면서 문제의 본질로 전세보증금이 '보증' 성격을 잃고 '대출' 성격을 지니게 된 점을 꼽았다. 주택을 매개로 큰 금액을 보증하는 취지로 마련된 전세제도가 마치 자금조달을 위한 대출 수단으로 전락해버렸기 때문에 이를 악용할 여지도 크고 제도적 보호 대상으로서도 모호해졌다는 것이다.

윤성진 연구위원은 이런 관점에서 보증금 미반환 피해가 발생하는 유형을 3가지 요인(임대인·시장·제도)에 따라 모두 6가지 시나리오로 발생한다고 구분했고, 이 시나리오들로 시장을 분석한 결과 보증금 반환 지연 위험가구는 2023년 상반기 기준 최대 49만2천여가구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다음 발제를 맡은 장국범 주택정책과 사무관은 전세피해 대책을 위해 그간 경기도가 노력해 온 사항들을 발표했다. 장 사무관은 먼저 도가 중앙정부 및 국회에 제도개선을 건의한 내용을 공유했다.

도는 ▲피해예방 측면(5가지) ▲피해지원 측면(5가지) ▲범죄처벌 측면(2가지) 등 모두 12가지 제도개선안을 유관기관에 전달했고, 이중 '임차보증금 반환목적 주택담보대출 활성화'와 '임대인 파산 등 피해유형의 확대'는 실제 도입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이어 도가 자체적으로 마련한 대응수단으로 '경기도 전세피해지원센터'를 1년여 동안 운영해오면서 피해상담 원스톱 접수·찾아가는 설명회·피해극복 상담사업 등을 소개했다. 피해자 금전적 지원에 대해서도 긴급이주비 지원과 전세보증보험료 지원을 비롯해, 긴급생계비까지 조례를 통해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도는 또 불법 중개행위를 특별점검하고 수사까지 진행해 이달 22일까지 모두 252건의 불법행위를 발견했고, 이를 중개한 공인중개사 80명을 적발해 44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장국범 사무관은 "여전히 전세사기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근거와 수단이 마땅치 않고, 시장이 여전히 취약하기 때문에 새로운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한다"며 도 차원에서도 토론회를 계기로 향후 제도개선안 및 정비사항을 발굴해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발제가 끝난 뒤 토론회 참석자들은 1시간30여분 동안 다양한 쟁점으로 자유토론을 이어갔다. 먼저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전세권 등기 의무화' 여부였다.

임차인이 등기부등본에 전세권을 설정하면 유사시 경매절차에 돌입하더라도 최우선적으로 보증금을 변제받을 수 있다. 그러나 현행법에서는 임대인의 동의가 있어야만 하고 비용도 발생해, 특히 사회초년생 임차인의 경우 실질적으로 전세권을 설정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때문에 임대인 동의 없이 등기 가능한 임차권을 통상 설정하지만, 이 경우 우선순위로 변제받기 위해서는 소송 등 법적 절차를 거쳐야만 해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권리로 취급된다.

유봉성 경기중앙지방법무사회 회장은 "계약 과정에서 전세권 등기를 의무로 규정하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임차권은 쉽게 말해 이용권일 뿐이고 경·공매 절차로 들어가는 경우 임차인이 권리를 보장받기는 매우 힘들며 법적 절차로 인해 소모되는 사회적 비용도 매우 크다"고 했다.

정상현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확실한 방법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전세권은 '물권'으로서 '채권'인 임차권에 비해 막강한 힘이 있는 만큼 임대인들이 응하지 않으려 한다는 게 현실이다. 국가가 의무화를 강제한다고 하면 가능이야 하겠지만, 전세권 등기시 전세금의 0.24%를 부과하는 등기비용 등을 대폭 낮추는 방안 등으로 대안적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김진유 경기대학교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도 "해외 사례에서도 국내와 유사한 전세제도가 있는 볼리비아의 경우도 전세권 등기를 의무화하고 있다"며 "싱가포르는 임대차 계약 시 국세청이 도장을 찍어야만 체결되는데, 우리나라도 이를 도입하면 세금체납 여부 등 임대인 관련 자료를 받아보거나 검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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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임차인과 임대인 권리의 균형점을 두고서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붙기도 했다.

박은성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연구원은 "전세권 의무화를 논하는 과정에서 일정 부분 과도하게 '임차인은 피해자, 임대인은 가해자'라는 논리에 접근하는 측면이 있다. 착한 임대인들도 얼마든지 많은 상황에서 전세권 의무 설정은 과도한 제한적 조치가 될 수 있다"며 "개인적 필요에 의해 대출받아 임대업을 하는 경우도 있으니 소유권 제한 측면에서 신중히 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에 김진유 교수는 "임대인의 과도한 소유권 제한이라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막대한 대출을 바탕으로 임대사업을 할 수 있는 제도적 맹점을 악용하는 사례 때문에 사기 피해가 반복되는 것이다. 제도적 미비점을 짚자는 것"이라고 했다.

이계삼 도시주택실장은 "큰 틀의 경제질서를 위해 제도적으로 고칠 점이 무엇인지, 어떻게 빈틈이 없도록 할지 고민하자는 취지에는 다들 동의하시는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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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피해자 측은 실제 피해를 입은 사례들을 설명하며 경기도가 지자체 조례로 지원 가능한 부분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기도 했다.

이철빈 전국전세사기피해자대책위 공동위원장은 "시설관리 문제를 짚고 싶다. 전세사기 피해로 관리비가 미납됐을 때 당장 건물의 수도가 끊기거나 청소, 분리수거 등 기본적인 생활 관련 지장이 크고, 소방이나 승강기 안전관리 의무를 지키지 않고 피해 임차인들에게 전가시키는 문제 등에 지자체가 더 적극적으로 나섰으면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발제 내용이 대부분 입법안 등으로 구성돼 있는데 조례를 당장 제·개정하면 제도적으로 해결책 마련이 가능한 문제들"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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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이계삼 실장은 "실제 부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조치들이지만 지자체의 인지 여부에 따라 혜택이 차이나는 만큼, 피해자들이 폭넓게 누릴 수 있도록 검토하겠다"고 했다. 박기덕 경기연구원 연구위원도 "다양한 의견들을 종합해 연구에 활용하고 검토하겠다"고 했다.

이밖에도 피해자 회생절차 관련 지원방안, 지자체와 공인중개사업계와의 협력방안, 청소년 및 사회초년생 대상 임대차계약 관련 교육방안 등 폭넓은 주제로 토론이 이어졌다. 이날 첫 토론회를 마친 도는 연내 수 차례 행사를 열어 의견을 모으고, 이를 바탕으로 상·하반기 각각 전세사기 피해 관련 대책을 내놓을 계획이다.

도 관계자는 "좋은 말씀들을 바탕으로 저희도 더 공부할 것이며, 한 번으로 끝나는 자리가 아니라 앞으로 모두 같이 좋은 대책들을 만들어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김산기자 mountain@kyeongin.com

■토론회 패널

이계삼 경기도 도시주택실장
김용천 경기도 주택정책과장
고중국 경기도 토지정보과장
문병근 경기도의회 도시환경위원회 의원
이철빈 전국전세사기피해자 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박은성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연구원
김준석 경인일보 기자
박기덕 경기연구원 연구위원
윤성진 국토연구원 연구위원
정상현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진유 경기대학교 도시교통공학과 교수
유봉성 경기중앙지방법무사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