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반도체 핵심인력 기술유출 빈번
경제간첩죄 신설 법률안 국회 제출
노하우 가진 임직원 파격대우 필요
기술은 경제, 경제는 곧 국가 안보
강한 처벌·획기적 지원 추진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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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우리나라는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우위에 있다. 하지만 핵심 기술인력이 해외 경쟁사로 이직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첨단 기술 인력을 향한 인센티브는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개발을 위해 5배의 연봉에, 자녀의 국제학교까지 보장하는 인센티브를 내걸고 핵심 인력을 포섭하고 있다. 인수합병을 통해 기술을 빼가기도 한다. 한국에 회사를 직접 설립하고, 엔지니어를 고용해 필요한 설계 기술을 가져가기도 한다. 공동연구를 내세워 대학이나 연구소에 자국의 연구원을 파견하여 핵심 기술 자료를 유출하기도 한다.

첨단 기술이 곧바로 천문학적 영업이익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퇴직 후 2년간 경쟁업체에 취업하지 않는다는 전직 금지 약정서를 작성한다. 그러나 효과는 크지 않다. 핵심 기술 인력의 이직에는 첨단 기술의 생존 주기와도 관련이 있다. 핵심 기술을 지닌 인력들은 보유한 기술이 최고의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을 때 전직을 결심한다. 애사심이나 애국심보다 경제적 여유와 노후의 보장을 중시하고 있다.

지난 3월7일 법원은 SK하이닉스가 미국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로 이직한 연구원을 상대로 낸 전직 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HBM 시장에서 존재감이 없었던 미국 마이크론이 4세대 HBM3를 건너뛰고 5세대 HBM3E 양산으로 직행했다. 마이크론이 HBM 시장을 선점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기술력을 따라잡은 배경에는 인력 스카우트와 기술 유출이 있었다고 본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산업기술 해외유출 사건이 지난 5년간 총 96건이 적발됐고, 피해액은 23조원으로 추정한다. 대법원에 따르면 2013~2022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1심 판결을 내린 141건 중 실형이 선고된 건 14건이었다. 2022년 영업비밀침해행위는 전체 28건 중에서 23건에 대해 집행유예가 선고되었다. 미약한 처벌이 기술 유출의 주요 원인이라는 비판이 가해졌다.

기술 유출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미국처럼 '경제 간첩죄'를 신설해야 한다는 법률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있다. 미국의 경제스파이법은 외국 정부 등을 위한 영업비밀의 절취 등을 연방 범죄로 처벌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 간첩죄의 신설보다 단기적으로는 양형으로 해결하고, 중장기적으로 입법을 검토할 사항이다. 형법상 간첩죄의 적용대상을 적국이 아니라 외국으로 개정하는 경우, 그것이 가져올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난 3월25일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국가핵심기술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이를 반영한 양형기준을 새롭게 공표하였다. 국가 핵심 기술을 해외로 유출하는 경우 최대 징역 18년을 선고하도록 했다. 특별감경인자였던 '형사처벌 전력 없음'은 집행유예 대상에서 제외했다. '실질적 피해 회복'과 관련해 '공탁'이라는 문구도 삭제했다. 공탁만 하면 당연히 감경되는 것처럼 오인될 우려가 있다는 비판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기술 유출과 핵심 인력의 해외 전직을 막기 위해서는 처벌과 규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첨단 기술과 노하우를 가진 임직원을 특정하여 파격적인 대우로 종신 고용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술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퇴직한 임직원들의 노하우를 대학이나 연구소 등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양자와 인공지능 등 분야에서 최고의 기술을 획득하기 위해 최고급 기술인력을 유치해야 한다. 최첨단 기술인력의 해외 전직을 막고, 최고급 해외인력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세금과 주거, 교육과 복지, 연구환경과 자금 등에 획기적인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

애사심과 애국심에 호소하는 것만으로는 최첨단 기술을 지킬 수 없다. 강한 처벌과 함께 파격적인 대우가 추진되어야 한다. 주요국이 최첨단 기술의 개발과 보호에 전력을 다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기술이 경제이고, 국가안보라는 점을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반도체가 없어도 세계가 대한민국을 우대할 것인가. 최첨단 양자 기술이나 인공지능이 없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가. 첨단 기술이 없으면 기업도 일자리도 없다는 현실을 직시할 때다.

/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