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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죄를 졌습니다. 하늘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속초시가 페이스북에 게시한 문구다. 지난 30일 벚꽃 없이 개막한 영랑호 벚꽃축제를 사과했다. 벚꽃의 변덕스러운 개화로 벚꽃 없는 벚꽃축제가 일상이 됐다. 29일 개막한 여의도 벚꽃축제도 벚꽃이 없다. 인간의 간섭에 분노한 대자연의 보복이 빚어낸 명실상충 현상이다. 벚꽃 없는 벚꽃축제는 대자연이 인류에 던지는 경고이다. 축제기간을 연장해 억지로 벚꽃축제의 명실상부를 실현해봐야, 이미 어긋난 자연의 질서를 외면하는 눈속임일 뿐이다.

하늘과 땅이 붙어있는 상태가 혼돈이다. 하늘이 하늘이 아니고 땅이 땅이 아닌 명실상충의 상태다. 명실이 상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사람 사는 세상이 혼돈에 빠진다. 공자가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君君, 臣臣, 父父, 子子)"며 정명(正名)을 강조한 이유다. 장자는 도척의 궤변을 지어내 공자의 현실 정치 참여를 조롱했지만, 실제로 도척이 공자를 박해하는 명실상충의 세상이라면, 망조든 세상이다.

목하 선거의 계절이다. 정당과 후보들의 유세전이 치열한데, 명과 실이 상충하는 난장엔 굉음이 가득하다. 야당은 정부여당을 무능한 검찰독재 악당이라 하고, 여당은 야당을 재판받는 악당이 이끄는 무리라 한다. 억지와 근거가 뒤섞인 캠페인이 여야의 명과 실을 분리한다. 명과 실이 상충하는 후보들도 한 둘이 아니다. 성직인 국회의원이 되면 안 되는 위선자, 불법혐의자들의 실체가 속속 드러난다. 실체가 드러나도, 공자를 겁박하는 도척처럼 언론과 여론을 겁박한다.

명실이 상충하는 인간의 간섭으로 자연의 질서가 무너졌듯이, 말세적 명실상충 현상이 사람 사는 세상을 혼돈에 몰아넣는다. 민주주의가 전체주의와 공산주의 만큼 위험해졌고, 종교는 신의 이름으로 인류를 전쟁에 가둔다. 거짓말과 위선으로 무장한 정치꾼들의 정치로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는 제도가 무너지고 법이 무의미해진다. 정치가 붕괴되면서 모든 분야에서 고귀한 가치들이 타락했다.

명실이 상충하는 언행은 거짓말이고 실체는 가짜다. 벚꽃축제에 벚꽃이 없고, 정치에 정치인이 없다. 인간으로 인해 자연이 질서를 잃고, 인간 세상이 무너지는 형국이다. 명실상충의 대혼란. 개벽을 위한 길조일까, 종말을 예언하는 흉조일까. 알 수 없어 두렵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