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손들과 무관·선생 학문과 사상
탁월한 경세가 애민정신 숭앙하는
후학들 모여 올리는 '특별한 제사'
공정·청렴하지 않은 공직자 많아
묘소앞에서 '공렴' 배워 실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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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무 다산학자·우석대 석좌교수
계절은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 4월 봄이 오자, 산야에는 복사꽃이 만발했다. 해마다 피어나는 복사꽃, 그 꽃이 피면 우리는 다산 선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1836년 음력 2월22일(양력 4월7일), 복숭아꽃이 만발한 그 날 선생은 75세를 일기로 이승을 하직하고 말았다. 그러니 오는 7일은 선생이 세상을 떠난 188주년의 기일(忌日)이다. 선생은 15세의 4월7일, 16세의 홍씨부인과 결혼식을 올렸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75세의 4월7일은 선생이 회혼(回婚)을 맞는 날이었다. 회혼례를 치르려고 가족·친척·제자들이 모여들던 그 날 아침 8시쯤 눈을 감았으니 회혼례의 음식들은 제수(祭需)로 변했다.

결혼 60주년을 맞은 선생은 깊은 감회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다. 병고에 시달리며 죽음을 기다리던 선생, 그 3일 전인 4월4일, 몽롱하던 정신이 총총하게 돌아와 '회근시(回근詩)'라는 제목으로 시 한 수를 읊었다. "60년 풍상의 세월 눈 깜짝할 사이 흘러가/복사꽃 활짝 핀 봄 결혼하던 그해 같네/살아 이별 죽어 이별이 늙음 재촉했으나/슬픔 짧고 기쁨 길었으니 임금님 은혜 감사해라…." 500권 이상의 방대한 저서를 남긴 대학자가 죽기 3일 전에 읊은 시의 한 구절이다. 말하자면 선생의 절필(絶筆)시였다. 결혼하던 무렵에 피었던 복사꽃, 죽음에 임박한 그때에도 복사꽃은 만발했다. 꽃대궐 속에서 다산은 운명했다. 그러면서 그의 인생을 정리한 한 대목은 참으로 멋지다. '슬픔 짧고 기쁨 길었으니 임금님 은혜 감사해라(戚短歡長感主恩)'라는 표현에서 긍정적인 일생으로 평가했으니, 그의 인생관은 또 얼마나 크고 넓은 관대한 삶이었던가.

두 번이나 감옥에 갇혀 국문을 받느라 죽음 직전의 고통에 시달렸고, 모략 중상에 걸려 18년의 긴 유배 생활로 찌든 삶을 살았건만, 슬픔은 짧고 기쁨은 긴 인생이었다니, '유림의 대업(儒林大業)'을 이룩한 학자로서의 성공을 인식하였기에, 기쁨이 길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으리라. 고난을 통한 환희의 길처럼, 다산은 불행과 액운을 딛고 좌절을 모르던 용기를 지녔기에 실학을 집대성한 조선 최고의 학자 지위에 올랐고 현자(賢者)로서 온 국민들의 추앙을 받기에 이르렀다. 21세기의 오늘, 우리 역사상 국민들이 대표적으로 추앙하는 한 분의 학자를 꼽자면 단연코 선생 한 사람뿐이다.

제사란 본디 후손들이 선조를 위해서 지내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러나 다산의 묘제는 그 성격부터 다르다. 후손들과는 무관하게, 선생의 학문과 사상, 탁월한 경세가로서의 능력, 애국심과 애민정신을 흠모하고 숭앙하는 후학들이 묘소 앞에 모여 선생의 생각과 마음을 이어받으려는 뜨거운 정신에서 올리는 특별한 제사이다. 현재 묘소에서 남들이 모여 묘제를 올리는 일은 오직 다산 선생 한 분뿐이다. 다산연구소는 설립과 동시에 해마다 수백 명의 후학들이 모여 묘제를 올리고 있다. 요 몇년 사이 코로나19로 약식으로 지냈지만, 금년은 예전대로 전통적 제례(祭禮)에 의해 참으로 볼품 있는 제를 올리려 한다.

'아아! 우리 선생은 세상 없는 대유(大儒)이시고 박학한 학문에 웅대한 경륜으로 요순 세상을 이룩할 능력을 지녔네…'라는 축문(祝文)을 낭독하고 초헌·아헌·종헌관 세 헌관이 제주(祭酒)를 올린다. 마지막에는 그렇게 즐겨 마시던 선생의 기호에 맞게 따뜻한 차로 헌다하면서 제를 마친다. 선생의 꿈은 참으로 크고 웅대하였다. 공렴(公廉)으로 공직자들이 공직을 수행하고, 사람이라면 사람다워지고, 나라라면 나라다운 나라여야 한다면서 어떻게 해야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 나라다운 나라가 될 것인가를 500여 권이 넘는 저서를 통해 가르쳐주었다.

지금의 공직자들, 공정하지도 청렴하지도 않은 사람이 많다. 선생의 묘소에 모여 공렴을 배워 실천해야 한다. 사람들이 사람답지 못한 경우도 있지만 나라는 참으로 나라답지 못한 나라로 급강하해버렸다. "이게 나라냐?"라는 소리가 가득하다. 우리 모두 4월7일, 남양주시 능내리의 선생 묘소에 모여 묘제를 지내면서 선생의 정신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하자. 결단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박석무 다산학자·우석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