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지속 어렵다는 현실 알게돼
팬들 조직 감시·시민운동 역량 갖춰
국민 의견 귀 기울여야 할 당위성도
이제는 ESG경영으로 혁신할 때다
우리는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을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을 팬(fan)이라고 부른다. 팬의 감정 에너지는 문화산업 매출 규모를 올리는 핵심 동력이고 앞으로 문화산업 조직 체계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중요한 자원이 될 것이다.
지난 2월7일에 남자축구 국가대표팀이 아시안컵 4강전에서 졸전으로 패배한 책임을 묻는 팬 움직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당시 팬들은 클린스만 감독 경질과 감독 선임과 관리에 무능했던 대한축구협회(축협) 혁신을 요구하며 분노가 들끓었다. 4강전 후 열흘도 지나지 않아 2월16일에 축협은 클린스만 감독을 경질한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축협이 후임 선발을 서두르면서 팬들 비난이 거세지자, 2월27일에 황선홍씨를 임시 감독으로 선임하였다. 그 와중에 한 영국 신문사가 손흥민 선수와 이강인 선수 간의 다툼을 보도하면서, 축협 회장 퇴진이나 조직 혁신에 대한 팬의 요구는 약해지고 이강인을 비난하는 것으로 치달았다.
이강인이 4강 졸전을 낳은 원흉으로 취급받으며 욕받이가 되어 팬들로부터 공격받았다. 그 결과 축협은 2026 북중미 월드컵의 아시아 예선전으로 3월21일에 개최된 태국전 경기의 홍보 포스터에 이강인을 제외하였다. 당시 축협은 팬들로부터 뭇매를 맞던 이강인을 태국전에 선발하는 게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이강인에 대한 맹비난은 이강인이 영국에 있는 손흥민에게 직접 가서 사과하고, 서로 화해하여 다정한 모습을 매체에 보여주고 3월26일 2차 태국전에서 승리하면서 사라지고 있다. 다행히 팬의 열정이 잘못된 방향으로 치달아 선수 생명이 위태로워지는 지경까지 가지는 않았다.
그런데 1차 태국전을 앞두고 응원단 '붉은 악마'는 정몽규 회장 퇴진을 요구하며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관중석의 '자리를 비워주세요'라는 문구로 보이콧 운동을 벌였다. 보이콧 운동이 무색하게 상암경기장의 6만5천석은 매진되었는데, 일부 팬들이'정몽규 퇴진' 문구를 쓴 팻말과 깃발을 들고 경기장에 들어갔다. 축협이 고용한 경호원이 깃발을 빼앗으며 실랑이가 벌어진 순간을 팬들이 영상으로 찍어 퍼뜨리면서 이 사건이 기사화되고 알려졌다. 이제 축협은 황선홍 임시 감독과 계약을 종료하고 다시 감독을 선임하는 과제에 당면하였다. 무엇보다 이 선임 과정의 합리성과 투명성까지 확보해야 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다.
지난 아시안컵 후에 벌어진 사태를 통해서 우리는 축협이 폐쇄적인 조직 운영으로는 더 이상 지속하기가 어렵다는 현실을 알게 되었다. 팬들은 단순히 축협 수익을 올려주는 대상에 그치지 않고, 축협 조직 운영에 영향을 행사하는 주체로 성장하고 있다. 축협이 조직을 운영할 때 팬을 합리적으로 설득하여 이들을 자기편으로 만들지 않는다면, 조직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일부 스포츠 전문가, 일부 재벌기업, 일부 언론사 간의 협업으로 스포츠조직 운영을 폐쇄적으로 좌지우지하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정보통신기술 발전으로 팬은 스포츠조직을 감시할 수 있고 시민 운동까지 조직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축협은 민간기관이지만 올해 예산 1천876억원의 약 18%에 해당하는 333억원이 공적 자금(스포츠토토지원금 225억원, 국민체육진흥기금 108억원)이라서 국민 의견에 귀 기울여야 할 당위성을 갖고 있다. 이제 축협도 ESG경영(친환경 경영, 사회적 책임과 투명한 지배구조를 발전시켜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려는 경영 전략)으로 조직을 더 혁신할 필요가 있다. 현재 이 변화를 추동하는 힘이 바로 팬의 열정이다.
/이현서 아주대학교 스포츠레저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