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적 자유민주주의 정치 유입
사회적 왜곡 경제적 불평등 초래
이번엔 진부한 진영논리 벗어나
공동체 운명위해 투표하길 바라
우리사회 미래 바꾸는 계기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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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이틀 뒤면 22대 국회의원을 선출해야 한다. 이미 마음속으로는 후보자를 결정했겠지만 이 기회에 이번 선거의 의미를 살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정권심판론과 정권위기론이 팽팽하게 갈려 있는 이번 총선은 정치철학적 관점에서는 민주주의의 이상적 모습이지는 않다. 최고 통치자를 뽑는 대선과 달리 총선은 지역 사회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선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선거의 최대 쟁점이 정권을 둘러싼 논쟁으로 나타나는 것은 우리 민주주의가 그만큼 정상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이념 중심의 양당정치와 국회 운영의 기형적 모습을 보면 총선의 쟁점이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을 띠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는 않다.

얼마 전 상영된 '건국전쟁'은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전기를 둘러싼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이 영화는 역사적인 평가와는 어긋나게 그를 복권시키려는 무리한 시도를 펼침으로써 논란을 자초했다. 너무도 전제적이며 반민주적인 정치를 펼친 사람을 초대 대통령이라는 후광만으로 역사적 사실에 어긋나게 그려낸 것은 이번 총선의 정권 평가 논쟁과 무관하지 않다. 이는 해방 이후 수립된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연결되며 한국인의 역사의식과도 무관하지 않다. 대한민국은 정부를 수립하면서 시작되었는가, 아니면 역사와 국가를 강탈한 일본제국주의의 폭압에서 해방된 국가인가? 전자일 경우 우리는 이 땅에 있었던 역사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적어도 한 국가의 정체성이 그 이전의 역사를 떼고 정립할 수 없다면, 정부수립을 건국으로 강변하는 것은 빈약한 주장일 수밖에 없다. 스스로 자신의 역사와 정체성을 제한시키는 어리석음이다.

대한민국이 그 이전의 역사적 정체성과 함께 일제 강점기의 독립투쟁을 배경으로 성립된 국가라면 삼일독립선언과 그 이후 성립된 임시정부의 전통을 수용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확립한 임시정부 강령은 삼균주의를 표방한다. 조소앙에 의한 것이지만 임시정부가 승인했고, 제헌헌법이 분명하게 제시한 국가 정체성이 여기에 있다. 삼균주의는 서구적 민주주의의 한계는 물론, 그 이후 국가 정체성을 둘러싼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논쟁을 넘어선 탁월한 정치 이념이다. 그 안에는 우리 역사에 담긴 대동정신과 공동체 정신을 현대적 공화정과 민주주의 체제에 녹여낸 정치 철학이 담겨있다.

이 정신은 정치와 경제의 균등은 물론, 이를 위한 교육의 균등함을 말함으로써 서구 정치철학의 일면적 이해를 넘어서 있다. 또한 그에 의해 초래된 현대 민주주의 정치의 불완전함을 보완하는 대동철학의 이념이 담겨있다. 여기서 말하는 균등은 획일적 균일이 아니라 개인의 사회적 상황과 개인의 실존을 수용하는 평등이며 권리와 의무를 함께 아우르는 이념이다.

이런 정치철학에도 불구하고 일면적으로 받아들인 서구적 자유민주주의 정치가 지금 우리가 아프게 겪고 있는 수많은 정치적, 사회적 왜곡과 함께 경제적 불평등을 초래한다. 왜곡된 교육체제나 기득권 카르텔의 횡포 역시 그와 무관하지 않다. 이번 총선이 정권을 둘러싼 논쟁으로 이어지는 이유는 현실 정치가 이런 철학을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안에는 고질적인 진영 논리가 자리하고 있다. 또한 불과 2년 사이에 검찰 독재는 물론 급격한 민주주의의 후퇴, 전반적인 사회적 퇴행이 너무도 폭압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덧붙여 경제적 어려움은 또 얼마나 심각한가. 불과 2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대통령 한 명에 의해 국가가 얼마나 허약해질 수 있는지를 목격하면서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의 한계를 여실히 보게 된다. 이번 선거가 정권 논쟁으로 이어지는 까닭이다.

다시 한 번 우리의 공화정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선택해야 한다. 이번만이라도 좁은 진영논리를 벗어나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과 우리가 사는 이 작은 공동체의 운명을 위해 투표할 수 있기를 바란다. 대동정신에 근거한 공화정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진부한 진영논리에 얽매여 이런 퇴행을 묵인할 것인가. 작은 이해에 빠져있으면 내 삶의 전체 지평이 무너지게 된다. 이 한 표가 우리 사회의 미래를 바꾸는 작은 계기가 될 것이다.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