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금이 소복을 입고 인정전의 월대위에 나아가 일식을 구(救)하였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4년 1월 1일의 기록이다. 세종은 새해 첫날부터 구식례(救蝕禮)를 치렀다. 태양이 달에 먹히거나 좀먹힌 현상이 일식(日食/日蝕)이다. 왕을 상징하는 해를 신하를 의미하는 달이 가리니 흉조다. 서둘러 해를 구하는 의식이 구식례인데, 정확한 시간에 의식을 치러야 한다. 일식 시간이 예상보다 일각(15분) 늦자 세종은 천문관리 이천복에게 곤장을 쳤다.
현대의 천문학자들이 곤장 맞을 일은 없다. 일식, 월식은 물론 혜성의 출현을 분 단위까지 확정할 수 있는 과학 덕분이다. 우주탐사선 보이저1호가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한 지구 사진을 전송하고 태양계와 작별한 때가 34년 전인 1990년의 일이다. 하늘에 기우제를 지내는 대신 구름씨앗을 뿌려 인공강우를 만드는 시대이니, 주기적인 천문현상도 초대형 우주쇼로 수년 전부터 흥행거리가 된다.
미국이 난리가 났다. 8일 낮 12시18분(현지시각)부터 2시간40분 동안 발생하는 개기일식을 보려고 수백만명이 나이아가라 폭포 등 일식 명당을 찾아 나섰다. 미 대륙에선 7년 만의 개기일식인데, 넓은 국토 탓에 뉴욕은 99년, 오하이오주는 218년만의 일식이란다. 메이저리그 낮 경기가 밤으로 변경되고, 교도소 재소자들은 "일식을 보게 해달라"고 주정부에 소송을 냈다니 이런 소동이 없다.
지구 반대편 미국의 개기일식이니 당연히 우리는 볼 수 없지만, 우리 땅에서 개기일식을 관측하기는 쉽지 않다. 1948년 개기일식 같은 금환일식이 가장 최근의 일식 관측이다. 2035, 2041, 2063, 2095년에 개기일식과 금환일식이 번갈아 오는데 남한에선 관측이 거의 불가능하고 북한에서나 잠시 관측할 수 있다고 한다. 한반도가 작아 지구-달-태양의 일직선에 걸리기가 그만큼 힘든 탓이다.
일식 관측이 힘들 정도로 작은 나라에서 일식 같은 현상이 범람한다. 환자를 뒷전에 두고 정부와 의사가 싸우고, 총선판에선 택도 없는 후보들이 뻔뻔하게 국민의 선택을 요구한다. 이권이 명분을 잡아먹고 권력이 나라와 국민을 삼키니, 달이 해를 가리는 일식의 흉조에 버금간다. 일식은 순간적이지만 일식 같은 현상은 고질적이니 심각하다. 조선의 왕들이 구식례로 해를 찾은 것처럼 선거로 나라에 기운이 밝아지길 바라지만, 장담할 수 없어 답답하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