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대대적으로 무전공제 확대
입학생들 2년동안 교양과목만 수강
정부, 올해 R&D 예산 14.7% 삭감
연구의지 꺾어 기초학문 붕괴 가속
미래세대 미래 빼앗을 권리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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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우 인하대학교 교수·前 미래학회 회장
교육부의 전공 선택권 확대 정책, 정부 R&D 예산 대폭 삭감은 기초학문의 몰락을 심화시키고 있다. 대학교에서 기초학문은 자연과학대학, 문과대학, 사회과학대학 등에 산재해 있는 다양한 학문을 말한다. 예를 들어 자연과학대학의 물리학과, 문과대학의 철학과, 사회과학대학의 경제학 등은 대표적인 기초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에 대학교 및 학과 평가가 진행되면서 학부제가 대대적으로 확대되었다. 입학생의 전공 선택권을 확대하자는 취지로 학부제를 시행하였지만, 부침을 겪었다가 대부분 학과제로 되돌아갔다. 최근에 교육부는 다시 무전공제를 대대적으로 확대하려고 한다.

학부제나 무전공제는 대학교 1·2학년을 마치고 학생들이 원하는 전공을 선택하는 제도이다. 무전공제는 학생들이 1~2년 동안 전공 없이 교양 위주의 공부를 하면서 자신의 전공을 결정하는 제도이다. 교육부는 대학혁신지원사업이란 명목으로 전국 대학 정원의 약 30% 정도를 무전공으로 뽑으면 정부예산 약 1조원을 각 대학에 지원한다고 한다. 한 대학당 약 75억원이 넘는 국고가 지원되기 때문에 사립대학은 이 돈을 따기 위해서 무전공 확대에 목을 매고 있다. 15년 동안 대학등록금 동결, 입학 정원 축소, 물가상승 때문에 등록금 의존도가 높은 사립대학은 생존의 갈림길에 서 있다. 무전공 확대는 대학의 자율적인 선택이라고 말하지만, 사립대학은 울며 겨자 먹기로 무전공을 확대할 수밖에 없다. 무전공의 확대는 전자공학, 컴퓨터 공학, 인공지능, 반도체, 경영 등의 인기 학과로 학생 쏠림을 유발한다. 사실 무전공제는 거의 2년 정도의 시간을 허비하는 제도이다. 입학생들은 2년 동안 전공 없이 가벼운 교양 과목만 수강하게 되어 전공 지식이 부족한 교양인을 양성한다. 융합학과 역시 공대 위주의 교양인을 양성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공과대학은 여러 정부 부처의 인력 양성사업과 기업체의 연구용역을 수행하기 때문에 넉넉한 재원과 몰려드는 학생으로 기업처럼 운영된다. 반면 기초학문 학과는 작은 구멍가게로 전락하여 존폐를 걱정하게 되었다.

정부는 올해 R&D 예산을 작년보다 4조6천억원(14.7%) 삭감하였다. 연구비 삭감의 여파는 즉각 연구 현장에 영향을 주고 있다. 특히 기초과학 분야 연구자들은 한국연구재단의 연구비에 의존하고 있는데, 연구비 수주에 실패한 연구자들이 속출하여 대학원생 인건비를 지급할 수 없게 되었다. 이는 기초학문의 학문 후속세대의 연구 의지를 꺾어 대한민국의 기초과학 붕괴를 가속할 것이다. 양자컴퓨터, 첨단 반도체 장비, 이차전지 등은 물리학, 화학, 재료공학 등이 어우러진 복합적 산물이다. 기초과학 이해 없이 이런 최첨단 분야의 발전은 불가능하다. 기초과학이 붕괴하면 우리나라는 첨단 장비를 개발할 능력을 잃을 것이며 결국 미국, 일본, 중국, 유럽의 첨단 기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놀랍게도 지금까지 쌓아왔던 공든 탑의 초석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다. 무전공제도의 확산, R&D 예산 삭감으로 기초학문의 붕괴를 유도하는 제도를 스스로 강하게 밀어붙이기 때문이다. 예산을 삭감하더라도 기초학문 분야의 예산은 줄이지 말아야 했다. 또한 기초학문 분야에는 무전공을 도입하지 않아야 한다. 정치가나 정부 고위직은 대개 문과 출신이 차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미래 세대가 영향을 받을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할 때 과학기술자의 의견이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이다. 첨단 과학기술은 변화가 빠르고, 미래 사회 변화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미국은 백악관 과학기술 자문회의 의견이 대통령의 의사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으며 최근에는 과학자가 대통령, 행정부, 국민에게 직언하는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그들은 들을 준비가 되어 있고, 과학자들의 의견을 국가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그들이 오늘날과 같은 첨단 과학 문명국가에 도달할 수 있었던 이유를 미국 정치가들은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과학기술 자문회의를 운영하고 있지만, R&D 예산 삭감이나 기초과학의 붕괴를 막지 못하고 있다. 과연 우리는 미래 세대의 미래를 빼앗을 권리를 가지고 있을까?

/이재우 인하대학교 교수·前 미래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