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 관련 인물 5명 구술 채록도
애스컴시티 민간인 죄수 수용 확인
인천시가 2026년까지 3단계에 걸쳐 추진하는 '캠프 마켓(부평미군기지) 관련 기록물 발굴·보존(아카이브) 사업'은 유무형 자산으로서 캠프 마켓의 가치를 공고하게 하는 작업이다.
현재 일부 건축물만 남아있는 캠프 마켓은 그 껍데기만 놓고 '보존가치가 높다, 낮다' 논쟁이 평행선을 긋고 있다. 관련 자료가 많이 남지 않은 국내뿐 아니라 미발굴 자료가 넘치는 해외까지 시야를 확장할 때 비로소 캠프 마켓이 국제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닌 자산인지, 앞으로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평가할 수 있다는 게 이번 사업에 참여한 전문가들 의견이다.
인천시가 전문 연구진과 함께 지난해 7월 착수해 올해 3월 마무리한 캠프 마켓 아카이브 1단계 사업의 시간 범위는 1900년대부터 한국전쟁 직전인 1949년까지다. 연구진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문서·사진·도면·항공사진 등 다양한 형태 자료 총 829점을 수집했다. 또 일본 방위연구소와 국회도서관 등지에서 문서와 지도자료 총 48점을 발굴했다. 캠프 마켓 관련 인물 5명을 대상으로 구술 채록도 했다. 대부분 처음 발굴한 기초 자료다.
특히 국내에선 접근이 제한된 미국 측 자료를 통해 베일에 싸였던 일본육군조병창(군수공장)과 주한 미군이 사용한 부지·시설물 등의 공간 배치, 운영 현황 등이 파악됐다. 이와 관련 미 공군이 1945년 10월27일 촬영한 항공사진, 애스컴(ASCOM·제24군수지원사령부) 시설공병대가 1947년 6월26일 작성한 애스컴시티 배치도 등이 주목된다.
아카이브 연구진이 수집한 문서 가운데 미군이 해방 직후인 1945년 9월24일부터 그해 12월19일까지 작성한 애스컴 상황에 대한 기록물(미국국립문서기록청·RG 338, UD 37042, Box 341) 또한 새로운 사실을 상당수 포함해 눈길을 끈다.
이 기록물에 따르면, 인천소년형무소(현 인천구치소) 마당에는 많은 양의 의료·수술 장비 등을 갖춘 병원이 있었다. 해방 직후에도 조병창이던 애스컴시티 인근 마을에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었으며, 그 일본군과 한국인들 사이에 "마찰과 무질서가 있었다"는 보고가 있었다.
애스컴시티에서도 민간인 죄수를 수용하고 있었는데, 1945년 10월30일 한국인 20명을 인천소년형무소로 이송해 줄 것을 요청하는 문서가 남아있다. 해당 문서는 '임성동'이란 이름의 죄수를 별도로 언급하며 1944년 1월23일 인천소년형무소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만기 출소한 경력이 있다고 기록했다.
아카이브 사업에 참여한 전갑생 모씨네 사회적협동조합 아카이브 연구소 연구원은 "임성동은 독립운동가였을 개연성이 있는데, 독립유공자 목록 등에선 이 사람을 찾지 못했다"며 "이들 자료는 인천과 부평의 해방 초기 역사를 알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사료"라고 말했다.
인천시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부터 애스컴시티 해체시기인 1973년까지를 시간 범위로 한 캠프 마켓 아카이브 2단계 사업에 최근 착수했다. 2단계 사업 기간은 내년 3월까지이며, 이후 곧바로 2026년 3월까지 3단계(1973년 이후~현재)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