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준공 약정 등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투자받는 과정에서 시행사가 시공사에 제시한 불공정 조항이 건설업계의 재무구조 부실을 일으켰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토교통부 시공 능력 평가 176위(지난해 기준)인 인천의 중견 건설사 영동건설은 지난 1월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회생 절차를 밟고 있다. 영동건설은 인천 영종국제도시의 오피스텔 신축공사를 비롯해 수도권 지역에서 공사를 진행해왔는데, 준공 기한이 예정보다 늦어지거나 미분양이 발생할 경우 지급보증 의무를 떠안는 ‘책임준공’ 약정에 발목이 잡혔다. 시행사와 공사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불리한 조항이 계약서에 포함됐는데, 건설경기가 급격히 악화하면서 자금난에 시달리다가 부도로 이어진 것이다.

GS건설과 제일건설(주)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지난달 분양에 나선 인천 송도자이풍경채 그라노블 역시 미분양이 발생할 경우 시공사가 미분양 물량 전량을 인수하는 조건이 포함돼 있다. GS건설은 지난달 29일 공시한 사업보고서에 해당 사업과 관련해 ‘사업정산기간 종료 시까지 미분양된 물건에 대해 사업시행자가 요청할 경우 대물인수 의무, 사업개발이익 미달분의 보상 의무 등의 사항을 정하고 있다’고 작성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건산연)은 9일 보고서를 통해 시행사와 시공사(건설사) 간에 맺은 사업계약서 상에 불공정 조항이 PF 위기를 불러일으킨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부동산 개발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시행사와 시공사, 금융기관 등 사업 참여자가 위험을 분담해야 하지만, 국내 부동산 PF는 시공사가 상대적으로 적은 이익을 얻으면서 대부분의 위험을 지는 구조가 고착화했다는 설명이다. 시공사가 책임준공 약정을 면제받을 수 있는 사유도 전쟁이나 지진 등 천재지변으로 국한돼 있고, 공사 중 발생할 수 있는 자재 수급 지연이나 노조 파업 등은 예외 사유로 인정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수익 고위험’임에도 불구하고 건설사들이 불공정 조항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은 국내 건설시장의 경쟁적인 수주여건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자본 규모가 크지 않은 중소·중견 건설사일수록 PF 조달을 위해 불공정한 계약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데, 부동산 침체기에 수익성이 악화하면 대량 도산으로 이어지는 문제가 반복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건산연 김정주 연구위원은 “현실에서 이뤄지는 PF 약정은 민법·공정거래법·건설산업기본법 등에 비춰 볼 때 불공정 거래행위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며 “금융위원회와 국토교통부 등 관련 부처가 공정성을 잃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동산 PF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분쟁 조정 기구를 일원화·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