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 케팔로스 '노년 견디는 건 돈' 단언
"남을 속이거나 거짓말 하지 않아도 돼"
한국은 정년후 능력무관 재취업 어려워
초고령화 시대엔 임금피크제 폐지 마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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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
서양철학사는 플라톤의 주석의 역사이자 그 영향 아래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플라톤의 저술은 26편(27편으로 보기도 한다)으로 모두 대화 형식이다. '국가(Politeia)'는 플라톤의 사상이 집약된 대표작이다. '국가'는 '정체'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루소는 '국가'를 "인간교육에 대한 세계 최대의 논문"이라 극찬한 바 있다. '국가'는 '정의(올바름)'·예술론·인식론·윤리학·정치사상·교육학 등 거의 모든 주제를 망라해 다루고 있다. 자신의 스승 소크라테스가 5명의 인물과 주고받는 대화 형식인데, 플라톤이 스승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인지 그도 아니면 두 사람의 말이 함께 섞여 있는 것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그야 어찌 됐든 '국가'가 후대에 끼친 영향은 일일이 거론할 수가 없을 정도다. 플라톤 이후의 거의 모든 정치철학이 '국가'의 자장 하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국가'에서 플라톤은 사유재산의 폐지와 재산과 처자(妻子)의 공유를 주장한 바 있는데, 이 같은 아이디어는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나 칼 맑스의 '자본론'과 '공산사회 이론'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또 후대의 문학작품에도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국가'의 제2장 '올바름과 국가의 기원'에서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작은 형인 글라우콘이 등장하여 대화를 주고받는다. 글라우콘은 올바름에 대해 설명하면서 리디아 사람 기게스(Gyges)의 반지에 대해 언급한다. 기게스의 조상은 리디아의 왕을 섬기던 양치기였는데, 우연히 금반지 하나를 얻게 된다. 이 반지는 신비한 능력이 있어 안쪽으로 돌리면 반지를 끼고 있는 사람이 보이지 않게 되고 바깥쪽으로 돌리면 다시 반지를 낀 사람이 나타나게 되는 권능을 가지고 있다. 반지의 주인은 왕비와 사통한 다음, 왕을 죽이고 왕국을 차지한다. 글라우콘의 비유는 올바른 사람의 올바른 행동과 올바르지 못한 사람의 올바르지 못한 행동에 대한 설명을 위해 동원한 이야기다. 이 같은 이야기는 후일 허버트 조지 웰스의 '투명 인간'이나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그런데 이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제1장 '올바름이란 무엇인가'에 나오는 소크라테스의 대화 상대자인 케팔로스의 발언이다. 케팔로스는 시라쿠사 출신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 인물이다. 거부임에도 그는 노년(老年)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은 생활방식이 아니라 재산과 돈이라 단언한다. 그는 재산이 많아야 "남을 속이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고, 신께 제물을 바치지 못해 빚지거나 다른 사람에게 돈을 갚지 못한 채로 저승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설파하면서 재산과 돈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국가'는 기원전 380년에서 370년 사이 플라톤이 50대 원숙기에 접어들었을 때의 저작물이다. 기원전 380년 전 그 까마득한 옛날에도 노년에 재산과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밝히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런 점에 비추어 지금 시행하고 있는 임금피크제는 폐지되거나 철회돼야 한다. 직업군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한국에서 60세면 거의 정년을 맞이하게 된다. 정년퇴직을 하고 나면 그 사람의 전문성이나 능력과 상관없이 재취업은 언감생심 꿈조차 꿀 수 없고 일자리도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빤하고 제한적이다. 현행 임금피크제는 연봉이 높은 직원들의 정년을 보장해주거나 청년 일자리 창출을 명분으로 퇴직 전 3년 전부터 일정 비율로 급여를 삭감하는 제도다. 그러나 한국에서 60세는 수입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자녀의 결혼 비용·의료비·상장례 등 가장 지출을 많이 해야 할 때이고, 또 쥐꼬리만한 국민연금도 64세 전후에나 수령이 가능한 형편이다. 초고령화 시대가 되면 60세 퇴직자들의 이런 경제적 곤경은 사회와 국가의 큰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임금피크제는 폐지돼야 마땅하고, 퇴직 3년 전부터는 급여를 깎을 게 아니라 오히려 평생 먹고 살 수 있도록 급여를 더 가산해 줘야 한다. 이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하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