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을 기피하는 시대에 연애 리얼리티 콘텐츠는 화제성을 낳으며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다. 나의 결혼은 시큰둥해도 타인의 연애에는 몰입한다. 사랑의스튜디오(1994.10~2001.11)부터 짝(2011.3~2014.2), 나는 솔로(2021.7~ )까지 수많은 콘셉트가 쏟아진다. 헤어진 연인들이 모여 새 연애 상대를 찾거나 골프를 치면서 데이트를 즐긴다. 돌싱의 연애를 관찰하고 동성간 매칭을 다루기도 한다. 지상파, 종편,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유튜브 등에서 '썸' 타는 프로그램들이 간판이다.
연애세포를 깨우는 청춘남녀들의 만남이 천년고찰로 무대를 옮겼다. '나는 솔로'가 아닌 '나는 절로'다. 솔로탈출을 간절히 원하는 30대 스무명이 강화 전등사에 모였다. 결혼기피 세태와 세계 최저 출산율에 불교계가 나서 1박2일 단체미팅을 주선했다. 신선하고 유쾌한 시도다. 남녀 10명씩 총 20명 모집에 337명이나 지원했다. 남자 14.7대 1, 여자 19대 1로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MZ세대는 어색한 맞선·소개팅보다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를 선호하고 낯선 경험 자체를 힙(hip)하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취향저격이다.
저출산·고령화 극복 교육을 받은 뒤 소원지에 각오와 설렘을 담아 대웅전 연등에 매달면서 일정이 시작된다. 자신이 정한 가명으로 참여한다. 사전정보 없는 상태에서 만나기 때문에 선입견도 없다. "고즈넉한 곳에서 마음을 내려놓으니 이야기가 잘 통합니다", "전문 레크리에이션 MC가 진행하는 게임도 하고 수학여행 온 기분입니다" 풍경소리 들리는 천년고찰에서 힐링과 만남을 동시에 하는 경험은 특별하다. 법복을 입고 벚꽃 흐드러진 오솔길을 산책하면 속세는 금세 잊게 된다.
불교에서는 인연의 무게를 겁(劫)으로 헤아린다. 겁은 천년에 한 번 떨어지는 물방울이 4방 1유순(약 15㎞)의 바위를 뚫는 시간이다. 부부가 된다는 건 8천겁의 인연이 있어야 한다니 기적 같은 일이다. 사찰 안 청춘남녀는 하루 동안 길을 동행하는 것만으로 2천겁의 인연을 맺었다. 전등사의 '나는 절로'에서 무려 네 커플이 탄생했다. 축하의 박수를 보낸 12명도 연인은 못 찾았지만 귀한 친구를 만난 것만으로도 좋았을 테다.
/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