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이 22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정부·여당을 추상같이 심판했다. 10일 투표 종료와 동시에 공개된 지상파 방송3사의 출구조사는 야권이 최저 개헌선에 육박하고 최대 개헌선을 초과하는 의석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날 밤 10시30분 현재 개표가 한창 진행 중이고, 여야가 치열하게 경합하는 선거구가 적지 않다. 하지만 출구조사가 예측한 여야 의석 차이가 워낙 커서 오차를 감안해도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야권의 압도적인 승리가 확실해 보인다.
이런 선거 결과는 국민이 국민의힘의 야당심판론을 거부하고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정부심판론을 지지한 결과이다. 여당이 심판론을 제기할 정도로 야권의 도덕성과 정치행태가 국민의 상식과 어긋난 것은 사실이었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모두 대표들이 사법리스크의 당사자들이다. 민주당은 극심한 공천 갈등과 후보들의 잇단 물의로 위기를 자초했다. 조국혁신당 후보들의 내로남불 행태도 심각했다.
하지만 민심은 야당 심판을 뒤로 미루고 정권의 불통과 여당의 무책임을 더 가혹하게 심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권 초반 특정 언론사와의 갈등을 이유로 도어스테핑을 중단했다. 국정을 설명하는 기자회견은 없었고 의·정갈등 관련 담화는 시기도 부적절했다. 스스로 소통 채널을 닫아버린 대통령의 메시지는 토막토막 끊겨 국정의 목표와 의지 전달에 실패했다. 사소한 대파 논란이 선거판을 뒤흔들 대형 악재가 된 것도 공감 능력이 부족한 대통령이 국민의 분노를 자초한 결과이다.
총선에 긴급 투입한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한계도 명확했다. 5천만의 언어로 새정치를 하겠다는 신선한 선언으로 여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막상 선거에 임박해서는 집권 여당의 민생 비전을 보여주는 데는 실패했다. 수없이 "국민의힘은 합니다"를 외쳤지만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모호했다. 외부 인사를 영입해 정권을 차지한 국민의힘은 총선마저 한 위원장에게 의지할 만큼 무기력했다. 한 위원장은 당정의 조력 없이 선거기간 내내 이·조심판론으로 일관하는 동안 여의도 정치에 갇혔다.
국민은 여야의 극단적인 혐오 정치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했다. 67.0%의 투표율은 14대 총선 이후 32년 만의 최고 기록이다. 민심의 작은 차이로 여야가 극단적인 승패를 목전에 두고 있다. 작은 차이에도 심판할 정당을 특정해 경고하는 민심이 무섭게 작동한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