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넓은 '우리' 진짜 의미 잊고 살아
다양한 사람 여행 기쁜표정 다 닮아
산속 나무들 잎·줄기·꽃 다르지만
물러나 보면 다를게 없는 숲이다


아침 해는 진작에 솟았고 창밖으로는 드문드문 승객들을 기다리는 비행기들이 보인다. 그리고 여행객들은 각자 색색의 여행가방을 들고 기대감에 들뜬 표정으로 분주히 공항을 오간다. 국제공항임을 증명하듯 외국인의 비율이 매우 높다. 국적도 인종도 다양하여 평생 봤을 외국인들의 수보다도 많은 외국인들을 매일 만나고 있다.
어떤 사연을 품고 이곳에 왔을까, 어떤 곳에서 어떤 경로로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되었을까, 상상을 하며 그들의 스쳐지나가는 얼굴을 보면 당연하게도 모두가 너무나 다르게 생겼다. 다양한 피부색, 다양한 얼굴 그리고 그들이 대화할 때 들리는 다양한 언어.
그런 혼재된 풍경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면 문득 이곳이 낯선 생태계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이라는 동일한 종들이 모여있는 것이 아닌, 모두가 다른 개개의 종들이 모여있다는 생각.
외국인을 처음 본 것은 일곱 살 때쯤이었던 것 같다. 부모님 손을 잡고 어린이 대공원에 놀러 갔다가 처음 외국인을 만났다. 물론 TV에서 종종 외국인을 보았지만 실제로 대면한 것은 처음이었다. 피부색도 눈동자색도 다른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때 내 세계에서 외국인이란 영화에서나 나오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TV 영화에서 나오는 외국인들의 대사는 모두 더빙으로 녹음되어 우리말을 쓰고 있었다.
우리 민족, 우리나라, 우리말, 우리라는 말엔 좀 묘한 구석이 있다. 어릴 때는 이 단어를, 남들을 배제할 때 자주 썼던 것 같다. 이건 우리 거야, 여긴 우리 집이야, 여긴 우리 학교야.
하지만 뜻을 되새겨보면 우리라는 말은 품이 넓어서 상대를 배제하지 않고 껴안는 말이다. 듣는 상대를 포함시키고 함께 한다. my mother가 아니라 우리 엄마라고 소개한다. 듣는 이를 포함시키고 위화감을 주지 않는 말하기 방식이다.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다보면 함께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들이 외국인 노동자들을 가리킬 때 자주 쓰는 말이 있다. "쟤네들." 우리로 묶이지 않는 타인들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노동시장에 유입되어서 임금도 낮아지고 일자리도 줄어든다는 반감이 그들을 더욱 배척하게 만든다. 동네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아지면 범죄율도 증가하고 집 값도 떨어진다는 말을 지나가는 주민들이 공공연하게 한다.
대부분은 근거가 빈약한 말들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인구가 줄어들고 도시가 공동화되고 노동인구가 줄어드는 것을 걱정한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우리나라가 단일민족국가라는 교육을 받고 자랐다. 단군의 자손, 한민족, 우리 민족, 우리 나라, 이런 개념들이 강조되다보니 우리 바깥에 있는 것들에 배타적이게 되고 따뜻하고 품 넓은 '우리'라는 말의 진짜 의미를 잊고 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국제공항의 다양한 사람들을 하나하나 보면 모두 다 다르게 보인다.
하지만 여행의 기쁨과 기대감에 가득 차 있는 그들의 표정은 모두 닮아있다. 다를 게 없다.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달라도 식당에선 모두가 입을 크게 벌리고 음식을 먹으며 가족과 웃고 이야기한다.
산에 가 보면 온갖 나무들이 햇빛을 향해 다투어 자란다. 잎도 다르고 줄기도 다르고 꽃도 다 다르다. 하지만 한발만 물러나서 보면 다를 게 없다. 다름 아닌 숲이다.
/이원석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