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풀벌레고 풀벌레가 나야"

호접몽 떠올리게 하는 포근한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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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벌레그림꿈

■ 풀벌레그림꿈┃서현 지음. 사계절 펴냄. 84쪽. 1만8천원 

 

'호랭떡집'으로 올해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 코믹스부문 라가치상을 수상한 서현 작가의 새로운 작품 '풀벌레그림꿈'이 출간됐다.

작가는 옛 그림인 초충도에서 그림 속에 사는 풀벌레 한 마리를 떠올려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동그랗게 뚫린 구멍 안으로 보이는 작은 풀벌레는 이제 막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를 마시려 도구를 준비한다.

풀잎, 그 안에 조그마한 집, 그 집 안에서 호로록 차를 마시는 풀벌레의 모습은 어쩐지 자꾸 시선이 머문다.

포근한 이불을 덮고 잠을 청하는 풀벌레의 일상은 별일 없이 흘러가는 듯 보이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풀벌레는 사람이 되는 꿈을 꾸기 시작한다. 낯설고 생소한 이 꿈은 풀벌레의 단조로운 일상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킨다.

이 풀벌레에게는 자신의 꿈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 쇠똥벌레가 있다. 들쥐가 나눠 준 빨간 수박을 먹으며 꿈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의 주변으로 오이, 도라지꽃, 초록색 덩굴식물들과 나비, 방아깨비 등 신사임당이 즐겨 그리던 '초충도'의 소재들이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그러다 풀벌레는 사람이 된 꿈 속에서 화분 속의 자신과 닮은 풀벌레 한 마리를 보게 되고, 이 이야기를 들은 쇠똥벌레는 이렇게 말한다.

"너가 사람인데 벌레는 너고 그럼, 사람이 벌레야? 그럼 너는 벌레야, 사람이야?"

꿈 속 화분이 깨지며 전환된 이야기의 배경은 박물관으로 바뀐다. 초충도를 보며 졸던 한 사람이 벌레가 되는 꿈을 꿨다고 한다. 풀벌레를 둘러싼 이야기는 이 사람이 꾼 꿈인지, 아니면 풀벌레가 꾸는 커다란 꿈의 일부인지 알 수가 없다.

책을 읽어 나가다 보면 문득 '호접몽'이 떠오른다. 인간인 내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에서 나라는 인간이 된 것인지와 같은 질문들로 만물이 하나됨을 깨달아가는 것이다. 또는 우주 어디에선가 공존하고 있을 두 세계가 꿈속에서 마주친 것은 아닐까란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책은 그렇게 풀벌레와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사는 세계가 오직 하나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묘하고 이상하지만 사랑스럽고, 순수해 보이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따듯해지는 그런 상상 말이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