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직후 1946년 역동적 배경
'농지개혁' 평등지권 실현 사건
지금은 물·바람·햇빛 사고 팔아
누구 소유 잊지않고 다른 규칙 중요
연극은 해방 직후인 1946년이 배경이다. 해방을 맞이한 지 일 년이 안 된 시점이다. 해방공간으로 불리기도 한 이 시기는 우리 사회가 가장 역동적으로 변동하던 때이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틀과 규칙을 설계하는 정치의 계절이기도 했다. 비록 미국의 직업 군인이 통치하는 미군정의 시기이기는 했으나 해방은 식민시기에 억눌렸던 민중의 열망이 분출하던 시기였다.
그중에서도 토지개혁이 단연 최고의 관심사 중 하나였다. 북한이 1946년 3월, 3개월만에 전격적으로 토지개혁을 단행함에 따라 남한의 미군정 또한 그에 대응하는 수순을 밟게 된다.
연극에서는 오각하(이승만)의 연설 장면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삼십 년만의 폭우로 인한 재난을 수습하는 와중에도 오각하의 연설을 들으러 수많은 군중이 모여드는 상황이다. 오늘 오각하가 발표하는 내용에 따라 저마다의 처지가 달라질 수 있다. 주인공인 거복은 오각하가 있는 한 북한과 같은 무상몰수 무상분배는 당연히 있을 수 없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는 정미소, 전당포, 그리고 농장을 운영하는 대지주이다. 반면 맹첨지와 막봉이는 처지가 다르다. 맹첨지는 거복의 노복이고, 막봉이는 거복의 소작인이다.
"나눠는 주되 돈을 받고서 나눠준다고 하십디다." 맹첨지가 전하는 오각하의 입장이다. 이 한마디에 연설을 듣고 있던 군중의 한 무리가 빠지고 만다. 그 무리에 막봉이도 있다. 연설장에 가기 전에 그렇게도 기세가 등등했던 막봉이가 아니던가. "아, 지금이 어느 세상인데 닭을 잡고 엿을 고아온단 말이에요?" 빈손으로 찾아왔다고 타박하는 거복을 당황하게 했던 막봉이의 말은 이렇게 뒤집히고 만다. "도조 바치고, 세금 내고,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타작마당에 쌀 한 톨 구경하기가 고작인데 무슨 놈의 돈으로 땅을 사란 말이야." 해방공간의 민중에게 땅에 대한 열망보다 큰 열망이 또 있었을까.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으로 시작한 지주 중심의 농업과 수탈이 사라지지 않고는 독립을 실감할 수 없지 않겠는가. "독립을 하면 뭘 하겠소? 땅도 안 나눠준다는데…." 거복과 같은 지주들도 농지개혁 자체를 반대할 수 없는 시대적 열망이 있었다.
남한의 농지개혁은 우리 사회에서 평등지권(平等地權)을 실현한 일대 사건이다. 일제 강점기에 형성된 대지주를 해체하여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에 따라 소유의 상한을 3정보(1정보는 9천917여㎡)로 하는 소농의 나라로 전환하였다. 그 결과 농민들의 자발적인 중노동으로 식량이 증산하고, 높은 교육열로 우수한 노동력을 양산하여 산업사회의 기반을 놓았다.
물론 도시의 토지와 임야를 제외하고 농지만을 대상으로 한 아쉬움이 남는다. 토지개혁이 아니라 농지개혁이라 하는 까닭이다. 또한 위토(位土, 묘에서 지내는 제사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경작하던 논밭)와 사찰 소유의 농지를 예외로 하였다. 그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농지개혁은 땅은 누구의 것이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을 묻고 그에 답한 역사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연극 '고목'은 사회적인 것, 혹은 공공성이 무엇인지를 다시 묻도록 한다. 약 팔십 년 전에는 땅은 누구의 것이어야 하는지를 우리 사회가 물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어떤 물음을 물어야 할까. 아마도 물과 바람과 햇빛이어야 하지 않을까.
땅이 절대적이고 배타적인 소유의 대상이라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물과 바람과 햇빛 또한 그러하다. 물과 바람과 햇빛까지도 사고파는 상품이 돼 버린 지금이지만 아직 완전히 늦은 것은 아니다. 물과 바람과 햇빛이 누구의 것이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을 잊지 않고 지금과 다른 규칙을 상상하고 답하는 게 중요하다. 여전히 전환의 시간이다.
/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