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우리 아닌 함께하는 승리여야
이념적 분열 구호 권력자 외침일뿐
경제 살리려면 머리 맞대는게 현명
당선인, 위선·탐욕 버리는 전제조건
상대를 진정한 파트너로 생각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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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
총선이 끝났음에도 오늘 유독 생각나는 그림이 있는데 중세와 근세의 전환기라 할 수 있는 르네상스 시절의 플랑드르 농민 화가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el, 1528~1569)의 작품 '사육제와 사순절의 싸움'(1559년 작)이다.

이 작품은 부활 이전 예수의 고통을 기리기 위해 절식과 고기를 먹지 않는 전통의 '사순절'(Lent)과 인간에게 주는 부활의 기쁨이라는 의미의 '사육제'(Carnival)의 모습을 대비시키면서, 부활의 진정한 의미가 퇴색되고 형식화된 지배계층의 위선(사순절)과 이기적 탐욕(사육제)을 주제로 삼고 그렸기 때문이다. 감추어진 위선과 탐욕을 비판하고 그들로부터 소외된 빈자(貧者)의 힘든 모습을 대비, 화폭에 담아내고 있다. 이 그림에서 화가는 소위 예수의 진정한 부활의 의미는 사라지고 오직 인간들이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이용하는 모습을 경고하고 있다.

브뤼헐이 지적한 인간의 이중적 모습은 420년이 지난 지금도 별로 변한 것이 없는 듯하다. 뜨거웠던 총선의 두 거대 정당의 목소리는 똑같이 국민을 위한다고 외치지만 이면(裏面)에는 마치 '사순절과 사육제의 싸움'에 나타난 위선과 탐욕의 이중성이 있고, 오직 자신들을 위한 권력 쟁취만이 있지 않나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이들의 이중적 모습은 중세의 사순절 기간 육류제품 금식 여파로 동물성 지방의 섭취도 금지해 버터, 치즈나 우유 같은 것도 못 먹게 할 때 교회(루앙 대성당)는 예외적으로 일부 부자들에게 이들 제품의 섭취권(攝取權)을 판매하여 막대한 이익을 챙긴 이중성이 오늘 이들 국회의원의 행동과 겹치는 것은 나만의 과한 생각일까?

이번 총선에 나타난 민의(民意)는 부패하여 자식을 위한 편법적 재산증식, 검사 전관예우 그리고 입학 서류 조작보다 더 무서운 집권당 세력 자신의 도덕 불감증에 국민이 외면한 결과로 보인다. 총선은 끝나지만 국민은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당시 루앙성당의 사제들이 아니길 지켜볼 것이다. 탐욕과 위선의 청빈자(淸貧者)로 위장하고 거친 이념적 행동들로 국민을 둘로 나누게 하고 그 틈새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권력을 취하려는 것을 더 용납 안 할 것이다.

예수가 죽임을 당한 이유 역시 당시의 기득권 계층(당시 예루살렘 대제사장 집단, 산헤드린)의 성전(국회)에 나가 '하나님의 성전'을 교묘하게 이용한 위선과 탐욕의 제사장 잇속을 방해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권력자의 위선과 탐욕에 의해 죽은 것이었다(마 21:12~13).

정치와 종교의 위선과 탐욕은 순진한 국민을 기만하고 잘 속인다는 무서운 속성을 가지고 있다. 기만하는 권력자는 국민을 이념적으로 나누기 좋아하고 그것으로 정권이나 교권(敎權)을 유지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히틀러가 자행한 끔찍한 유대인 600만명의 학살 역시 정치와 종교의 복합적 작품이며 당시 독일 국민은 히틀러에게 세뇌당해 그 학살에 동조했다.

이러한 권력자의 위선과 탐욕의 이데올로기는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에 2차 대전 이후 현대의 포스트모더니즘은 극단적 선과 악의 이항적(二項的, dichotomy) 이데올로기 대립에서 벗어나려고 외치고 있다.

이항적 대립의 모순을 극복한다는 것은 오늘 총선 결과가 누구의 일방적 승리가 아니라는 점에 귀결된다. 상대에 대한 승리가 아닌 함께하는 승리여야 한다. 함께하는 승리가 바로 위선과 탐욕을 내려놓는 전제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 상태에서 상대에 대한 겸손의 포용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러므로 서로 내밀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분열의 이념적 구호는 권력자의 구호이며 국민이 겪는 지금의 경제위기를 살려낼 수 없기 때문이다. 경제가 살려면 서로 대화를 하고 최선이 아니더라도 머리를 맞대고 차선을 찾는 정책을 만드는 현명함을 가져야 한다. 상대는 같이 걸어야 할 동반자이다.

이제 브뤼헐이 그리려 했던 위장(僞裝)의 시대로부터 조금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국회 당선자의 첫째 임무는 자신의 위선과 탐욕을 버리는 전제조건으로 국회 입성 첫날부터 진정으로 상대를 파트너로 생각하는 것이다.

/김영호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