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이 우장춘 박사 탄신 126주년이었다. 인공지능 시대에 철 지난 농학자를 떠올리는 이유는 우리가 그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했던 조선군 훈련대 제2대 대장 우범선은 일본으로 도망친 뒤 사카이 나카와 결혼해 1898년에 우장춘을 낳았다. 우장춘이 여섯살 때, 우범선은 고종이 보낸 밀사 고영근 등에게 살해당했다.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혼혈아로 살아온 우장춘은 도쿄제국대학 농학부를 졸업한 뒤 일본 농림성 농사시험장에 들어가 세계적 육종학자로 성장했다.
그는 1936년 '종의 합성'으로 도쿄제국대학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당시엔 다윈의 '종의 기원'이 정설이었다. 종(種)이란 생긴 모양이 비슷하고, 교배했을 때 같은 품종이 나와야 했다. 이에 펑퍼짐한 배추와 속이 꽉 찬 양배추는 같은 종이 아니라 교배가 불가하다. 그러나 우 박사는 염색체 10개인 배추와 염색체 9개인 양배추를 교배해 염색체 19개인 유채를 만들 수 있음을 증명했다. 서로 다른 두 종을 교배해 새로운 종을 만든 것이다.
생명공학의 게놈 분석을 응용한 그의 이론은 유채, 피튜니아, 무, 배추, 양배추 등에 적용돼 우량 품종을 대량 생산하는 길을 열었다. 해당 논문 발표 이후 교과서에 있는 다윈의 '종의 기원'이 '종의 합성'이 됐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다양성, 다원화의 기틀이 우 박사의 논문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 박사를 알면 그의 업적이 보인다. 평택꽃나들이 축제에서 노랗게 흔들리는 유채꽃을 보면서 우장춘 박사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는 것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당연한 마음가짐이다.
/성제훈 경기도 농업기술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