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대마다 선망하는 직업이 있다. 1950년 6·25전쟁 이후 시절이 하수상했던 만큼 공직자가 되면 출세로 여겼다. 1955년에는 이규환 감독의 '춘향전'이 개봉됐는데 한국영화 도약의 계기가 됐다.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배우전문학원 경영자와 극장 간판화가가 돈을 벌었다. 1960년대에는 가발 수출 붐으로 가발기술자가, 1970년대는 중동 건설기술자가 외화벌이에 나섰다. 1980년대는 은행원과 증권회사 직원, 1990년대는 인터넷 혁명으로 웹마스터, 프로그래머가 각광받았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때는 안정적인 의사·변호사·교사·공무원·외국계 회사원이 손꼽혔다. 2000년대 들어서는 연예인, 크리에이터부터 뇌과학자, 로봇 연구원 등 직업 선택의 폭이 더욱 커졌다.
잡코리아의 최근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6명이 입사한 회사에서 1년도 못 채우고 이직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기 퇴사 이유를 보니 역시 연봉과 워라밸이다. 특히 Z세대(1995~2003년생)는 직장에서 치열한 내부 경쟁을 통해 직급을 높이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더 좋은 조건이 있다면, 일과 삶의 균형이 보장된다면 미련 없이 사표를 던진다. 저연차 공무원들의 '탈공 러시'도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5년 미만 공무원의 조기 퇴직자는 2022년 1만3천321명으로 2019년(6천663명)보다 2배 이상 늘었다. 낮은 보수와 경직된 조직문화, 과도한 스트레스로 구직자들이 외면하고 있다. 올해 9급 공무원 공채 경쟁률이 21.8대 1로 32년 만에 최저치로 추락한 배경이다.
자격증 취득 열기가 대단하다. 올해 전문직 자격증 응시율은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공인노무사는 1만2천662명이 신청해 2018년(4천744명)보다 3배 가까이 늘었다. 감정평가사도 6천746명이 지원해 4배 뛰었다. 사무직이 아닌 현장형 자격증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고되고 험한 일은 꺼릴 것만 같은 MZ의 반전이다. 지게차운전기능사, 도배기능사, 장례지도사뿐 아니라 건설 현장에도 세대교체 바람이 분다.
직업은 시대의 거울이다. 물가는 미친 듯이 뛰고 수명은 길어졌는데 미래는 막막하다. 불안한 청춘들이 입사와 동시에 인생 이모작, 리부팅을 고민하는 이유다. '직장인들의 꿈은 퇴사'라는 농담에 쉽사리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