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8일 포천시 한 단독주택에서 페르시안, 아메리칸숏헤어, 스코티쉬폴드 등 품종묘 5마리가 수십구의 고양이 사체들 가운데 방치된 채 발견됐다. 무허가 품종묘 번식장의 흔적은 참혹했다. 현장에 동행한 경인일보 기자에게 동물권 단체 '카라' 회원은 "최악의 동물학대 현장"이라고 분노했단다. 지난해 9월엔 동물학대혐의로 신고된 화성시의 한 반려견 번식장에서 1천400여 마리의 번식견과 자식견들이 구조됐다. 번식견들은 좁은 케이지에 갇혀 다량 출산을 반복하는 동안 온갖 질병에 시달렸다. 국내 최고 시설을 자랑하던 허가 받은 번식장은 개들에게 생지옥이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이끄는 특사경과 지자체 관계자, 동물단체들의 합동구조작전으로 번식견들은 출산 케이지를 벗어날 수 있었다.
반려견의 상당수 품종들은 인간의 유전적 학대의 산물이다. 영국의 국견인 불도그는 균형잡힌 몸매에 입도 길었던 견종을 가정견으로 개량(?)하면서 지금 같은 모습이 됐다. 호흡곤란, 부정교합, 고관절 이형성증 등 천부적인 질병을 갖고 태어나 수명이 짧다. 작고 귀여운 포메라니안은 중형견인 스피츠와 대형견인 사모예드를 수백년 동안 악착같이 소형화시켜 만들어낸 품종이다. 유전적으로 온전할 리 없다. 8~9세 무렵이면 심장질환이 발생한다.
반려동물 인구 1천500만명에 이르면서, 각종 문화지체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동물권을 인권 수준으로 주장하는 반려인과 동물단체들이 급증했지만, 전통적인 관점으로 동물을 바라보는 인구도 그 못지 않다.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한 '개 식용 금지 특별법'은 개 식용을 둘러싼 오랜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지만, 반려동물을 둘러싼 다양한 논란 중 일각에 불과하다. 최근엔 공장형 번식이 반려동물 문화의 뜨거운 이슈다. 급증하는 반려동물 수요에 맞출 공급의 문제인데, 동물권 단체는 수요-공급이란 용어 자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반면 관련 업계는 생산·유통이라는 산업의 본질에 집중한다. 반려동물 문화와 산업의 충돌은 제도가 문화를 따라가지 못한 결과이다. 동물권 단체들은 번식·유통 조건을 규제하는 '한국형 루시법' 제정을 주장한다. 법안 발의는 됐는데 개 식용 금지법처럼 관련 업계의 반발이 거센 모양이다. 반려인은 반려동물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으로 입양한다. 관련 업계도 '입양'에 걸맞은 윤리와 문화를 갖추어야 맞다.
/윤인수 주필
지금 첫번째 댓글을 작성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