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반대 시위로 병원신세 불구

경찰 폭력 진압 피해 조사 안돼
강연회·기념탑 보존·관리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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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천기계공고 4·19혁명 기념사업회가 지난 19일 인천기계공고에서 졸업생과 내·외빈 등을 초청해 '제64주년 4·19혁명 기념식'을 개최했다. 당시 가두시위에 참여한 3학년 졸업생 80여명을 비롯해 이봉락 인천시의회 의장과 도성훈 인천시교육감, 황효진 인천시 정무부시장, 박용주 인천보훈지청장 등이 이날 행사에 참석했다. 2024.4.19 /조경욱기자 imjay@kyeongin.com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어. 1·2학년을 끌어들일 수는 없으니 3학년이 총대를 메고 1교시가 끝나자마자 학교 담장을 넘었지."

1960년 4월19일 오전, 인천공고(현 인천기계공고) 3학년 학생 300여 명이 거리로 나서 "이승만 정권 퇴진"을 외쳤다. 교사들이 정문을 막아서고 만류했지만, 학생들은 담장을 넘어 밖으로 뛰쳐나갔다.

당시는 이승만 대통령과 자유당 정권이 자행한 3·15 부정선거가 도화선이 돼 전국에서 민주화를 염원하는 학생 시위가 확산하고 있을 때다. 특히 4·19혁명 하루 전날인 1960년 4월18일 고려대 학생들이 시위대를 해산하고 귀교 중 대한반공청년단 소속 정치깡패들에게 피습을 당한 사건이 인천공고 학생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교내 규율부장을 맡았던 이경백(81·당시 기계과 3학년)씨는 "3·15 부정선거 이후 마산에서 김주열 학생이 눈에 총(최루탄)을 맞으면서 인천에서도 학생들의 불만이 커졌다"며 "교내 학생 모임 '일심동기회'에서 민주화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논의를 이어왔다"고 설명했다.

정권 반대 시위에 나선 학생 300여 명은 수봉산을 넘어 숭의사거리 쪽으로 향했다. 이미 대기하고 있던 경찰의 무자비한 '곤봉 세례'가 이어졌다. 학생들은 동인천, 주안, 부평 등지로 흩어졌다. 인천공고 학생들은 경찰 진압을 피해다니면서도 주변 학교 학생들에게 시위 동참을 호소했다.

인천공고 주변 학교들은 "깡패들이 선동하는 시위에 동참하지 말라"고 방송했는데, 나중에 학교 교장들이 인천공고에 찾아와 사과했다고 한다. 일부는 피투성이가 된 채 경찰에 연행됐고 1주일 넘게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권흥식(82·당시 기계과 3학년)씨는 "나를 포함해 22명 정도가 경찰 곤봉에 맞아 입원했다"고 기억했다. 당시 경찰의 폭력 진압에 따른 학생 피해가 어느 정도였는지에 대한 조사는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았다.

사단법인 인천기계공고 4·19혁명 기념사업회가 지난 19일 인천기계공고 교정에서 64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기념사업회는 4·19혁명을 경험한 인천공고 졸업생들이 주축이 돼 지난해 창립했다. 기념사업회 주도의 첫 행사에는 4·19혁명에 참여한 인천공고 졸업생 80여 명과 인천기계공고 재학생 250여 명이 참석했다.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4·19혁명 유공자 12명에게 인천시장상, 인천시의회 의장상, 인천시교육감상, 인천보훈지청장상을 수여했다. 이들은 '4·19의 노래'를 제창하고 교내 4·19 기념탑에 헌화했다.

최승일 인천기계공고 4·19혁명 기념사업회장은 "앞으로 4·19혁명 관련 인사 강연회를 열고 교내 4·19 기념탑 보존·관리를 이어갈 계획"이라며 "관련 문헌 자료 확보에도 앞장서 훗날 후배들이 4·19혁명 정신을 계승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경욱기자 imja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