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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시는 최근 사립미술관인 백영수미술관을 시립화 하기로 결정했다. 사진은 극도로 단순한 선으로 인체를 재치있게 표현한 백영수 作 '토르소'(2000년대). /경인일보DB
 

의정부시가 지역 사립미술관인 백영수미술관을 시립화한다. 24일 시와 백영수미술문화재단은 시립화 협약을 맺을 예정이다. 고 백영수 화백의 화실 겸 자택을 2018년 리모델링해 개관한 백영수미술관은 의정부 첫 사립미술관으로 지역의 문화 명소였다. 백 화백은 이중섭, 유영국, 장욱진과 신사실파 동인으로 활동한 미술계의 거장이다. 미술관은 그의 작품 4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하지만 소재지인 호원동이 재개발되면서 미술관 이전이 불가피해졌고, 이를 안타까워 하는 지역 문화계의 여론이 일었다. 결국 백 화백 가족들과 의정부시의 통 큰 결단으로 미술관은 거의 제자리를 지키게 됐다. 가족들은 조건 없이 작품 기증의사를 밝혔고, 의정부시는 법적 검토를 거쳐 재개발구역의 기부채납 공원부지에 미술관을 신축해 시립화하기로 결단한 것이다.

백영수시립미술관은 사립미술관 공립화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큰 의미가 있다. 유족들은 작품의 보전과 유지에 시립화가 최선이라는 판단에 따라 사유 대신 공유(公有)를 결단하는 공공의식을 발휘했다.김동근 의정부시장은 미술관의 가치를 인정할 수 있는 안목이 있었고, 신속한 행정으로 시립화를 결정했다. 유족의 선의와 시의 행정이 멋드러지게 어우러져, 백 화백의 문화적 유산은 의정부 시민의 공공재로 영속하게 된 것이다.

사립 미술관·박물관들의 운영 현실은 척박하다. 간판만 걸고 운영을 중단한 시설들이 적지 않다. 공립화를 요청하는 사립 시설들이 속출할 개연성이 짙다. 하지만 문화적 안목보다 비용과 효율을 앞세우는 행정은 소극적이다. 실례로 현대미술의 대가 박생광·전혁림 화백의 작품으로 각광받았던 용인시 이영미술관은 설립 20년만에 매각돼 사라졌다. 한 때 용인시와 기증 협의도 있었다지만 공론화에 이르진 못했다.

미술관·박물관은 공·사립 경계를 떠나 도시와 나라의 문화공공재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예산으로 사립 문화시설을 지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의정부시의 백영수미술관 시립화는 특별한 모범 사례여서 일반화하기 힘들다. 사립 미술관·박물관의 공립화엔 보상과 운영과 관련된 이해가 미시적으로 충돌할 수 있다. 작은 이해 충돌로 사립 영역의 문화시설들이 운영을 포기하거나 문을 닫는다면 공공재인 문화 콘텐츠의 대규모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문광부와 지자체가 사립 문화시설의 공립화에 대비해 다양한 제도적 매뉴얼을 만들어 놓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