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대통령에게 있는 총선참패 책임
韓, 고군분투 했지만 불똥만 튀어
홍준표, 차기경쟁자 싹 자르기 심사
'누가 공명·중달인지' 각자 상상에
뒷물이 앞물 밀어… 洪, 또 헛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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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영 (사)인문공동체 책고집 대표
1950년, 북한군은 파죽지세로 남쪽으로 진격을 거듭한다. 물러설 곳이 없는 국군은 연합군의 도착을 기다리며 낙동강 전선 사수에 사활을 건다. 한편, 포항에선 한 무리의 소년들이 북한군에 맞서 싸운다. 영화 '포화 속으로'의 줄거리다. 영화는 소년병들이 온몸을 던져 포항여중을 사수하는 전투 장면을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소년병들의 중대장 오장범 역을 맡은 최승현(아이돌그룹 빅뱅, 탑)의 연기가 단연 압권이다.

22대 총선 참패로 여당은 자중지란에 빠진 모양새다. 자성의 목소리 대신 책임론만 난무한다. 책임론의 한복판으로 불려 나온 이는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이다. 정치초년병 한동훈의 경험 부족과 무능, 오판이 참패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특히, 한동훈 때리기에 열을 올리는 이는 홍준표 대구시장이다.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단언컨대, 총선 패배의 책임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있다. 집권 중반기 총선은 필연적으로 중간평가의 성격을 띤다. 집권 초부터 줄곧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바닥 수준이었다. 그뿐만 아니다. 총선을 코앞에 두고 용산발 악재들(양대 특검 거부, 김건희 일가 양평 땅 문제, 채상병 사건 수사 과정에 얽히고설킨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호주대사 임명, 황상무 홍보수석의 막말 등)이 차고 넘쳤다.

악조건 속에서도 한동훈 비대위는 얼핏 희망의 씨앗을 틔울 것처럼 보였다. 잠시나마 보수 유권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엄청난 인파를 몰고 다녔다. 박근혜 이후 전국단위 선거에서 그만한 바람을 일으킨 정치인은 없다. 선거는 구도이자 프레임이라고 볼 때, '이재명 대 한동훈', '정권 심판론 대 운동권 심판론'은 나름 그럴듯한 구도로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잇따른 헛발질에 한동훈의 고군분투는 도로였다. 야권의 공세가 더없이 거셌다. 당 대표에서 쫓겨난 이준석이 '윤석열 죽이기'의 선봉에 섰고, 민주당의 무능정권 심판론이 수도권을 휩쓸었다. 조국혁신당의 '3년은 너무 길다'는 구호도 큰 호응을 얻었다. 와중에 대통령이 한 일이라곤 명품백을 파우치로 둔갑시키고, 호주대사를 '도주대사'로 전락시키고, 선거판에 난데없이 대파를 등장시키고, 비례 순번에서 밀린 측근을 위한 위인설관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참패의 불똥은 한동훈에게만 튀고 있다. 특히 홍준표는 대권놀이하면서 셀카만 찍다가 말아먹었다는 둥, 심지어 주군에게 대들다가 폐세자가 됐다는 둥 한동훈 때리기를 지속하고 있다. 그 속내는 빤하다. 대통령 책임론을 희석해 여권 내 일정 지분을 확보하고, 차기 주자로서의 입지를 굳히려는 심사다. 잠룡이지만 차기 주자로 보기는 힘든 이준석에게는 우호적이지만, 차기 경쟁 가능성이 있는 한동훈은 아예 싹을 잘라버리겠다는 심사도 읽힌다. 야권과 일부 언론 역시 정치인 한동훈에 대해 박한 평가를 한다. 한풀이하듯 한동훈 특검을 주장하는가 하면, 한동훈은 '이미 긁은 복권'이라거나 '다 분 풍선'이라고 깎아내린다. 정보 비대칭성을 활용했던 검사 시절과 달리 초보 정치인 한동훈은 여지없이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도 있다.

누르는 힘이 강하면 용수철은 튀어 오르게 마련이다. 한동훈 일병 구하기 작전이 등장할 법하다. 따지고 보면 한동훈은 패장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소년병들이 낙동강 전선을 지키는 데 공헌했듯이, 한동훈 일병 역시 정권 심판론과 숱한 용산발 악재에도 불구하고 낙동강 전선을 지켜냈다. 한동훈은 이미 긁은 복권이 아니라 모퉁이만 살짝 긁힌 신차다. 다 분 풍선이 아니라 이제 막 불기 시작한 풍선이다. 정보 비대칭성에 안주한 검사였을 뿐만 아니라 정보 대칭적 조건에서 야당 의원들의 공세에 맞서 장관직을 거뜬히 수행하기도 했다.

바야흐로 한동훈 일병 구하기는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좇는'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다. 누가 공명이고, 중달이 누구인지는 각자 상상에 맡긴다. 장강의 뒷물이 앞 물을 밀어낸다. 홍준표는 또다시 헛물만 켜고 있다.

/최준영 (사)인문공동체 책고집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