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분담 성평등 인식 매우 높아
긍정적 평가 일색 '잘못된 진단'
정말로 저출산 걱정한다면
노동시장부터 바꾸는데 힘 모아야
최근 KDI(한국개발연구원)는 경력단절의 측면에서 극저출산의 원인에 대한 실증분석을 내놓았다. 이에 따르면 2013년 1.19에서 2019년 0.92로 떨어진 데는 여성의 출산에 따른 고용상 불이익이 40%가량의 지분을 차지한다. 2015년을 기해 무자녀 여성의 경력단절 확률은 대폭 감소했지만 유자녀 여성의 그것은 소폭 감소에 그쳤는데, 이는 곧 여성들로 하여금 직장에서 퇴출되지 않으려면 출산도 결혼도 피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작용한다.
과거와 달리 우리 시대의 청년여성 다수는 자녀보다 일을 택한다. 경제성장이 진행될수록 여성이 양자택일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노동시장에서, 가정에서, 온 사회에서 갖은 노력을 다하는 것이 일반적인 선진국의 모습이지만 지금껏 한국은 정말 저출산을 우려하는지 의심이 들 만큼 헛물만 켰다.
한국의 후진적 노동시장은 유자녀 가정에도 악영향을 끼치며 저출산을 부채질한다. 10세 미만의 자녀가 있는 맞벌이 가정의 유급 및 무급 노동의 양태를 보면, 여성은 물론이고 남성 입장에서도 롤모델로 삼을 만한 가정이 소수에 불과하다.
통계청의 '생활시간조사'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10세 미만 자녀를 둔 맞벌이 가구는 3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60%를 차지하는 제2유형 가구의 경우, 남성과 여성의 일일 평균 유급노동시간(이동시간 포함, 식사시간 제외)이 각각 9시간55분과 8시간18분이고 무급노동시간은 53분과 3시간6분이다. 여성의 전체 노동시간이 하루 36분 더 많아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풀타임으로 일하고도 가사노동을 도맡다시피하는 여성이 불만을 제기했을 때, 남성 입장에서는 이성적인 대화와 조정이 아닌 감정적 맞대응을 할 수도 있을 만큼 절대적인 유급노동시간이 짧지도 않고 상대적인 노동시간의 차이도 작지 않다.
31%를 차지하는 제3유형은 유급이 9시간10분과 4시간19분, 무급이 45분과 6시간6분으로 남성은 풀타임, 여성은 파트타임으로 구성돼 있다. 제2유형에 비해 남성의 노동시간 대비 가사분담도 낮고 소득까지 뒤처지지만, 남녀 모두 전통적 성역할에 가장 우호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사분담 만족도가 남녀 둘 다 가장 낮아 지향점이 되기엔 여러모로 부적절하다.
끝으로 8.5%에 불과한 제1유형은 노동시장과 가정 모두에서 성평등이 구현된다. 유급은 7시간42분과 8시간으로 여성이 약간 더 일하지만 절대적 노동시간이 양쪽 다 비교적 길지 않고, 무급은 3시간32분과 3시간13분으로 역시 대동소이하다. 이 희귀한 성평등 가구는 가사분담 만족도뿐 아니라 소득마저 가장 높고 전통적인 성역할에도 가장 반대한다.
한국보다 출산율이 훨씬 높은 국가라고 해서 제1유형의 가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단 제2, 제3유형의 남성 유급노동시간이 한국보다 현저히 짧고 그 대신 가사 및 돌봄 시간이 월등히 길다. 이는 여성 쪽도 마찬가지여서 한국의 풀타임 맞벌이 여성에 비해 근무시간은 짧고 집안일에 쓰는 시간은 더 길다.
세계 저출산의 역사를 매년 새로 쓰는 한국의 입장에서 노동시간을 혁명적으로 줄여야만 남녀 공히 수용할 수 있는 가사분담의 여지가 생긴다. 숱한 조사에서 여성은 배우자의 제1조건으로 공평한 가사분담을 꼽아왔다. 노동시장의 천지개벽을 통해 묻혀진 여성의 목소리를 실현하는 것은 저출산 대책의 제1조건일뿐더러 남성 역시 가장 만족할 미래이다.
해외의 연구를 보면, 출산을 전후하여 성평등에 대한 기대가 현실과 어긋났을 때 여성이 겪는 좌절감이 저출산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한국 청년세대의 가사분담 성평등 인식은 기성세대와 달리 매우 높다. 이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 일색이었지만 잘못된 진단이다. 후진적 노동시장 하에서 실현되지 않는 남성의 가사 성평등 인식은 여성으로 하여금 한층 출산을 꺼리도록 만든다. 정말로 저출산을 걱정한다면 노동시장부터 송두리째 바꾸는 데 온 힘을 모아야 한다.
/장제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