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탐구하는 교실… 이공계 인재 '케미' 키운다


일반고면서 특화 교육과정 선택땐 '심화 수업·연구 수행' 장점
도내 50곳 지정… 첨단기자재·에듀테크 활용 모둠활동 진행도
능동적인 배움·학습성장·진학도움… 학생·학교·학부모 '호응'
경기도교육청 "지원정책 더욱 강화… 수학·과학 소양 함양 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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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아트코리아

#1. 의정부 상우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박솔민, 허지민 학생은 일상생활 속에서 피해와 불편을 야기하는 '껌'에 주목했다. 해마다 껌을 씹다가 뱉지 못하고 삼키는 어린이의 수가 많고, 또 제대로 버리지 않으면 미세플라스틱이 돼 환경오염을 일으킨다는 정보는 두 학생이 껌에 대한 실험을 설계하는 계기가 됐다.

두 학생은 껌 제조과정에서 들어가는 감미제가 껌의 가소화(형태변화)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실험에 착수했다.

학생들은 비커 5개에 아스파탐, 수크랄로스, 소비톨, 스테비오사이드, 사카린 용액을 각각 준비한 뒤 시판껌을 넣어 3주간 변화를 관찰하고 점도를 측정했다. 그 결과 감미제의 당도가 높을수록 가소화가 잘 일어난다는 점을 발견했다.

#2. 같은 학교 박가은 학생은 산업 폐수 속에 포함된 불소이온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반도체 산업 성장에 따라 발생하는 불산 폐수가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다는 문제점에서 시작한 문제의식이었다.

박 학생은 지도 교사들의 도움을 받아 현재 불산 폐수 제거 방법으로 쓰이는 칼슘화합물(Ca(OH)2)을 이용해 직접 침전법을 실험해보고, 다공성을 이용해 불산 이온을 흡착할 수 있는 벤토나이트를 활용한 응용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벤토나이트와 칼슘화합물을 함께 활용하면 불소이온을 더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 같은 학생들의 연구는 의정부 상우고가 과학중점학교이자 미래형 과학실을 보유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과학중점학교는 일반 학교 환경에 일부 수업과 시설을 확충해 수학과 과학 교육에 특화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학교를 말한다.

과학중점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일반 교육과정과 과학중점으로 특화된 교육과정 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데, 과학중점 교육과정을 택하면 심화과목 이수와 함께 앞선 사례와 같은 연구를 수행하게 된다.

현재 경기도교육청은 23개 지자체 50개교를 과학중점학교로 지정한 상태다. 이런 과학중점학교는 학생들이 직접 자율적으로 탐구과제를 정해 연구를 수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도가 매우 높은 편이라고 도교육청 관계자는 전했다. 학교에서 적성을 키울 수 있고, 진학에도 도움이 돼 학부모들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또 과학중점학교에선 관련분야 학생 동아리가 활성화돼 있어 경시대회나 학술제, 공모전 등에서의 성과도 상당하다. 카이스트(KAIST) 등 이공계 특성화 대학으로 진학하는 비율도 증가 추세다.

그밖에 과학중점학교는 지역사회와 연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하고, 인근 학교나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활동도 활발해 수학·과학분야 교육의 거점으로서도 역할을 하고 있다.

상우고 미래형 과학실
지난 24일 의정부 상우고등학교 미래형 과학실에서 학생들이 조별 활동을 하고 있다. 2024.4.24 의정부/김도란기자 doran@kyeongin.com

지난 24일 방문한 상우고등학교 미래형 과학실에선 조별로 실험에 한창인 학생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4~6명이 한 조로 파란색 실험 가운을 입은 학생들은 각자가 설정한 가설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실험물과 모니터를 오가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실험대마다 설치된 대형 모니터엔 표와 그래프가 띄워져 있었고, 실험 결과를 두고 학생들은 토의를 거듭했다. 지도를 맡은 홍진호, 이미소 교사가 테이블을 돌며 학생들에게 관련 지식을 설명하자 곳곳에서 깨달음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의정부 상우고
과학중점학교인 의정부 상우고 미래형 과학실 벽면에 부착된 학생들의 연구 성과들. 2024.4.24 의정부/김도란기자 doran@kyeongin.com

'케미스튜디오(ChemiStudio)'라고 이름 붙여진 상우고의 미래형 과학실의 경우 첨단 기자재뿐만 아니라 에듀테크 기술이 접목돼 있다. 모둠수업을 하고, 그 과정을 토론하고 모니터 등을 통해 공유할 수 있어 학생들의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학습을 돕는다.

상우고에서 과학중점반 활동을 하고 있는 2학년 인소정 학생은 "실험할 때뿐만 아니라 많은 활동을 화학실에서 하고 있다. 특히 미래형 과학실로 바뀌고 나서는 공간도 쾌적하고, 배우는 것이 즐겁다"면서 "일전에 화학공학과 교수님이 초청강연을 오신 적이 있는데,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홍 교사는 "일반교이면서 심화된 과학연구 수업이 가능한 점은 과학중점학교의 큰 장점"이라며 "수학과 과학을 포기하다시피 했던 학생들도 이공계에 대한 관심을 느끼고 진로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상우고
김영애 상우고 교장이 지난 24일 과학중점학교로서 현재 진행하고 있는 교육 프로그램과 성과를 설명하고 있다. 2024.4.24 의정부/김도란기자 doran@kyeongin.com

김영애 상우고 교장은 "학생들의 진로와 연계된 이런 교육과정에 예산을 집중적으로 투입해 다양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공교육이 나아갈 방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도교육청은 앞으로도 수학·과학 교육을 강화한 정책을 통해 이공계 인재를 육성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과학중점학교와 미래형 과학실 외에도 과학고 신규지정, 선교육·후선발 영재교육, 지역대학 활용 교원역량 강화 연수 등이 다양하게 추진된다.

조영민 도교육청 융합교육정책과장은 "인공지능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선 수학·과학분야 전문을 키우는 교육과 모든 학생의 수학·과학적 소양 함양이 필수적"이라며 "미래 변화와 혁신을 선도하는 인재를 육성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의정부/김도란기자 doran@kyeongin.com

※ 이 기사는 경기도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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