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무 기쁘고 행복하고 기분이 좋지만 마음 한편으로 착잡하고 힘들다." 신태용 인도네시아 감독이 한국을 꺾고 난 뒤 남긴 소회다. 한국은 지난 26일 U-23(23세 이하) 아시안컵 8강전에서 인도네시아에 패해 4강 진출에 실패했고, 파리 올림픽 출전도 불발됐다.
'공은 둥글다'는 격언대로 축구에선 의외의 결과가 속출한다. 대한민국의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은 세계 축구사의 가장 충격적인 이변 중 하나로 꼽힌다. "항상 독일이 이기는 게임이 축구"라는 찬사를 들었던 독일 축구는 러시아 월드컵에선 한국에, 카타르 월드컵에선 일본에 잡혀 16강 진출에 실패하는 참사를 겪었다.
최근 아시아 축구 변방들의 활약이 눈부시고 그 중심에 한국 지도자들이 있다. 베트남의 '박항서 매직' 을 신태용, 김판곤 감독이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 재현하고 있다. 국가 대항전에서 패배가 당연했던 국대팀들이 면모를 일신하자 세 감독은 각국에서 2002년 대한민국의 히딩크급 영웅으로 대접받는다. 인도네시아 국민은 신 감독을 '한국 최고의 수출품'이라고 환호한다.
반면 아시아 축구 강국 한국은 잇따라 이변의 제물이 됐다. 손흥민·이강인·김민재 등 유럽 빅리그에서 활약중인 스타 플레이어들로 64년만의 우승을 장담했던 아시안컵에서는 요르단에 덜미를 잡혀 4강에서 탈락한데 이어, 2개월여 만에 동생들이 또 다시 카타르 참사의 희생양이 됐다.
한국 축구가 단단히 고장났다. 한국 감독들을 만난 아세안 국가 대표팀들이 2002년 한국 대표팀처럼 신바람을 내는 동안, 한국은 감독보다 스타들에 의존하면서 '팀 코리아'가 무색해졌다. 축구만의 얘기가 아닐 듯 싶다. 인구와 자원이 풍부한 아세안 국가들은 언제든 한국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잠재력이 크다. 성장의 기본을 닦고 성공의 경험이 쌓이면 잠재력은 폭발한다. 아세안 국가들의 제조업은 한국을 대체 중이다.
신 감독은 조국의 10연속 올림픽 출전을 막은 심정이 착잡할 테지만, 우리 축구팬들은 팀 대신 선수만 남은 한국 축구가 착잡하다. 축구는 감독의 리더십과 선수들의 조직력이 기본인 스포츠다. 기본이 무너진 분야가 축구만이 아닌듯한 정치, 경제, 사회 현상이 즐비하다. 한국 축구의 잇단 카타르 참사가 예사롭지 않은 징후 같아 꺼림칙하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