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3001000346100033741

올해 300주년을 맞는 인물들이 있다. 서양철학의 대명사 임마누엘 칸트와 청나라 문신 기윤(紀윤)은 모두 1724년생으로 올해가 탄생 300주년이다. 그런가 하면 조선의 제21대 왕 영조도 즉위 300주년이다. 왕세제였던 연잉군 영조는 30세가 되던 1724년 즉위하여 1776년까지 무려 52년간 재위했다. 조선의 왕들 가운데서 제일 오랫동안 왕위에 있었다.

독일 관념 철학의 완성자 칸트는 단순하고 정확한 삶을 살았다. 평생을 쾨니히스베르크에 살았다. 새벽 5시면 어김없이 기상하여 홍차를 마시고, 7시에 강의하고 9시에는 집필을 했으며, 1시에 지인들과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3시가 되면 산책을 했다.

기윤은 희대의 천재였으나 시대를 잘못 만나 편찬 사업으로 일생을 보낸 불우한 학자였다. 청의 통제로 역량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사고전서'의 편찬에만 매달렸다. '사고전서'는 명나라 때 최고의 백과사전인 '영락대전', 청 강희제의 최대 업적인 '강희자전'과 유서(類書)인 '고금도서집성'과 함께 건륭제 시대 최고의 업적인데, 공교롭게도 '순수이성비판'이 나온 1781년에야 완성됐다. '사고전서' 편찬을 총괄한 학자가 바로 기윤이다. 기윤이 쓴 지괴소설 '열미초당필기'는 1천244종의 이야기가 수록된 저작물로 '요재지이'처럼 귀신과 여우 등 신비한 이야기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사고전서'는 워낙 방대한 양이라 찬수(撰修)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목판으로 간인하는 것이 효율적이지 않다고 하여 대추나무로 만든 목활자를 이용했는데, 이를 '취진(聚珍)'이라 한다. 수원화성 축성의 전 과정을 기록한 '화성성역의궤'를 인쇄한 정조 연간의 활자를 정리자라고 하는데, 정리자는 '사고전서 취진판'을 모방하여 만든 금속활자다.

오늘 우리가 먹은 세 끼 식사와 일상생활 속에는 수많은 이들의 땀과 노고와 은혜가 숨어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누리는 삶과 정신문명의 발전은 수많은 예술인·학자·사상가들의 덕택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6명은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 독서율은 43%, 독서량도 3.9권에 불과했다. 칸트와 기윤은 몰라도 국민들이 인문학과 책 읽기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보다 획기적이고 과감한 독서 장려 정책이 필요하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