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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보다 먼저 지구에 터 잡은 모기는 끈질기게 사람을 괴롭혀왔다. 백악기(기원전 1억4천500만~6천600만년)에 출현한 작은 모기는 살아남고, 주인공인 거대 공룡들은 멸종됐다. 보통 15㎜, 무게 2~3㎎의 모기는 지구상에서 살인을 가장 많이 하는 동물이다. 말라리아, 뇌염, 황열병, 뎅기열 등을 전파해 매년 약 72만명의 목숨을 앗아간다. 뱀이 1년에 죽이는 사람이 5만명, 개가 2만5천명, 체체파리가 1만명, 인간은 47만5천명이다. 인간보다 무서운 '죽음의 사자'가 모기인 셈이다.

모기는 인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말라리아는 고대 로마부터 인도와 중국까지 이미 5·6세기에 풍토병으로 자리잡았다. 1594년 4월 임진왜란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3도 수군 병력 2만1천500명 중 5천663명이 말라리아에 걸려 1천904명이 사망했다. 당시 왜군과의 전투 사망자가 150명인 것에 비하면 매우 심각한 피해다.

이상 기온으로 4월부터 모기떼가 출몰하고 있다. 기상청이 집계한 올해 4월 평균 기온은 지난 29일 기준 경기 14.9℃, 인천 14.5℃로 지난 10년 중 가장 높다. 겨울이 짧아지고 봄·여름은 길어지면서 아열대기후화되고 있다. 모기는 9℃에 날기 시작하고 13℃ 이상에서 흡혈한다. 통상 5월부터 모기 개체 수가 급증하는데 매년 등장 시기가 빨라져 걱정이다.

비행기나 선박을 통해 뎅기열과 지카바이러스 감염증 등을 유발하는 모기종이 국내에 유입된다. 국내 말라리아 환자 수는 지난해 747명으로 3년 연속 증가세다. 경기·인천지역에서만 560명(75%)이 감염돼 무려 12명이 사망했다. 바이러스를 옮기는 흰줄숲모기는 겨울철에 대부분 죽기 때문에 아직까지 바이러스가 다음 해로 이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1월 평균기온이 10℃ 이상 되면 성충은 살아남게 된다. 머지않은 미래, 365일 모기에 시달릴 수도 있다.

지구는 모기의 바이러스 공격에 이미 무방비다. 신기술로 모기의 게놈을 조작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지구온난화가 본질이다. 다산 정약용은 '모기를 증오한다'는 의미의 '증문(憎蚊)'이라는 시조를 남겼다. "蚊由我召非汝愆(문유아소비여건), 내가 너를 부른 거지 네 탓이 아니로다." 지구를 괴롭힌 사람 탓이지 모기 탓이 아니다.

/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