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기업들이 하청 노동자들을 무늬만 정규직 형태인 자회사 직원으로 채용하며 열악한 처우를 유지하는 편법이 성행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주요계열사인 현대제철은 지난달 전남 순천에 자회사인 현대IEC를 설립해서 현대제철 순천공장의 협력업체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했다. 2011년에 현대제철 순천공장 파견노동자 161명이 낸 불법파견 소송에 대해 13년만인 지난 3월 12일 대법원이 현대제철에 불리한 판단을 내린 데 따른 조치였다.
해당 노동자들은 하도급업체 소속이지만 장기간 현대제철의 관리를 받아 파견근로자로서의 지위가 인정되기 때문에 현대제철이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파견근로자보호법 제6조2에 사업주는 파견근로자가 2년 이상 근무한 경우에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현대IEC는 이들에 대한 채용조건으로 현대제철 정규직 대비 80% 임금 지급 및 사측에 법적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부제소 확인서' 제출을 요구했다. 노동계에서는 현대제철이 직접고용 의무를 회피하기 위한 꼼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법망을 비웃는 대기업의 유사사례들이 비일비재하다. 포스코도 불법파견 단속을 피하고자 지난해에 포항과 광양제철소에 6곳의 정비 자회사를 만들었다. 기존 사내 하청업체를 통폐합하는 방식이다. 국내 제빵업계 1위인 SPC의 허영인 회장이 자회사인 피비파트너즈의 노조탄압을 이유로 구속기소된 경우도 같은 범주에 속한다. SPC는 2017년에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5천378명을 불법 파견근무로 운용하며 임금 체불 등으로 물의를 빚어 노동부가 이들을 직접 고용할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SPC는 자회사 '피비파트너즈'를 설립, 이들을 채용하면서 과태료 162억원의 납부를 면했다.
민간기업의 파견노동자 꼼수 고용 관행은 문재인정부가 단초를 제공했다. 문정부는 공약인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실천하고자 2017년 7월부터 공공부문의 파견, 용역 노동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정규직 전환을 추진했다. 급격한 정책에 공기업들이 당혹해하자 정부는 연착륙방안으로 직접고용 외에 자회사 설립을 통한 정규직 전환을 제시했다. 하청업체 근로자들이 제기하는 불법파견 소송에 골머리를 앓던 민간기업들에 정부가 모범답안(자회사 설립)을 제시해준 것이다. 사려 깊지 못한 정부의 패착이었다. '눈 가리고 아웅'이란 노동계의 불만 해소를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