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자 육아방식 상호작용 결과물
애착관계는 부모·자녀사이 아닌
성년기 친구·이성과 '반복 패턴'
가장 가까운 사람 관계부터
안정적인가 스스로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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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규 전북대 석좌교수
지난 칼럼에는 자녀의 기질을 알아보는 것과 이러한 기질에 맞춰서 어떠한 양육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이번에는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방안 두 번째로 모든 관계의 핵심인 '애착(attachment)'을 중심으로 이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애착이란 자신에게 의미있는 타인과의 정서적 유대를 의미한다. 이는 사랑이나 애정보다는 관계의 질에 기반한 의미로 학문적 용어라고도 볼 수 있다. 애착은 동물행동학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이러한 관점은 인간은 선천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접근을 하고자 하는 성향, 즉 애착 욕구를 가지고 태어나며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Bowlby에 의하면 영아는 웃음, 울음, 옹알이, 빨기 등 선천적으로 결정된 반응과 신호들을 이용하여 부모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한다. 이처럼 영아의 사회적 반응이나 신호들이 생득적인 생물학적 기본 계획에 의한 것이라면 영아가 신호를 보낼 때, 그에 따라 반응해 주는 것을 통하여 적합한 발달을 촉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애착의 유형을 알아보고자 하는 실험이 이루어졌는데 에인즈워스(Ainsworth)는 영아와 양육자를 대상으로 낯선 상황을 만들고 양육자와 분리·재결합 과정에서 영아가 보이는 행동에 따라서 애착의 유형을 나누었다. 낯선 상황에서 양육자와 자녀가 놀이를 하는데 갑자기 낯선 사람이 들어오고, 양육자는 자리를 비웠다가 잠시 후 다시 들어오는 재결합 에피소드를 시행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양육자가 자리를 비웠을 때 영아의 반응을 관찰하고, 양육자가 돌아왔을 때의 반응을 살펴보는 것으로 애착 유형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선 가장 긍정적인 유형인 안정 애착(secure attachment) 영아들을 살펴보았더니 이들의 양육자는 영아의 요구에 민감하고 적절하며 신속하게 반응하는 특징이 있었고, 양육자는 영아들이 스스로 놀 수 있도록 허용하고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반면 불안정 애착을 형성한 영아의 경우 회피 애착(insecure-avoidant attachment)의 경우에는 영아들의 양육자는 영아의 요구에 무감각하며 영아와 신체적 접촉이 적고 화가 난 것 같아 보이고 영아를 거부하는 듯한 행동을 한다. 이러한 영아는 양육자가 떠나도 울지 않으며, 양육자와 재결합 시에도 양육자를 무시하거나 강하게 회피한다. 특이하게 낯선 사람과 어머니 모두에게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이 유형의 영아들 어머니를 조사한 결과, 이들은 영아의 요구에 무감각하며 영아와 신체적 접촉이 적고 화가 난 것 같아 보이고 영아를 거부하는 듯한 행동을 한다. 또 다른 불안정 애착 유형인 저항 애착(insecure resistent attachment)의 경우에는 양육자가 실험실을 떠나기 전부터 불안해하고 양육자 옆에 있어도 탐색을 별로 하지 않으며 양육자가 방을 나가면 심한 분리불안을 나타낸다. 특이한 것은 양육자가 돌아오면 화를 내고 거부하면서도 오히려 양육자 곁에 머물러 있으려 하는 양면성을 보인다.

'불안정 애착 유형인 회피와 저항 애착이 딱히 문제가 있는 것일까'라고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양육자의 육아 방식과 상호작용한 결과물로 이루어진 애착 관계는 이후 영아가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갔을 때조차 이와 비슷한 유형의 애착 관계를 타인과 맺게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즉, 이러한 관계가 단순히 가족 간의 부모·자녀 관계가 아니라 이후 자녀의 성년기 친구 혹은 이성관계에서도 반복되는 패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동학대가 일어나는 부정적인 고리의 기본에는 불안정 애착을 기저에 두고 있다. 일단 안정 애착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한다면 적어도 자녀가 양육자를 믿지 못하는 불신의 관계를 맺고 이것이 타인에게까지 전이돼 불안정한 애착 관계의 반복을 맺지 못하도록 예방할 수 있다.

우리는 하루에도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는다.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부터 편안하고 안정적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면서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정명규 전북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