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환대받고, 누구든 차별없는… 여기 '디아스포라'
공존의 가치 좇는 영화 75편 채비
단편 출품 최다… 국제 위상 느껴
故 서경식 특별 프로그램 등 신설
영화·미술 경계 뛰어넘는 시도도
제12회 디아스포라영화제가 오는 17일 오후 7시 인천문화예술회관 광장에서 막을 올린다. 닷새 동안 전 세계 29개국의 영화 75편을 만날 수 있다. 다양성과 공존의 가치를 좇는 영화들로 가득하다.
막바지 준비에 여념이 없는 디아스포라영화제 이혁상 프로그래머를 지난 10일 인천 중구 인천시영상위원회 옆 카페에서 만나 올해 영화제에서 무엇을 주목해야 할지 물었다.
디아스포라란 말이 유래한 유대인들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 간 전쟁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영화제의 마스코트라 할 수 있었던 고(故) 서경식(1951~2023) 도쿄경제대학 명예교수가 없는 영화제이기도 하다.
- 개막작 '그때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어떤 영화인가.
스위스의 이반 야그치 감독 작품인데, 부모 쪽이 팔레스타인 출신 난민으로 스위스로 이주했다. 유대인 가족인 이웃 소꿉친구가 성장 후 이스라엘 정착촌으로 이주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시작되는 고민과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한국 사회에선 테러리스트란 이미지가 아니면 팔레스타인이란 존재 자체에 큰 관심이 없었다.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과감하게 개막작으로 선정했다.
- 장편 섹션 26편 중 주목할 영화는.
인천과 이주 역사로 연결되는 미국 하와이의 하와이국제영화제와 올해 처음 교류한다. 하와이국제영화제에서 한국계 심지인 감독의 '그레이트 디바이드'를 추천해 이번 장편 섹션에서 상영한다.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한 영화들은 국제적으로도 뜨거운 이슈이기도 하다. 칸이나 토론토 등 주요 영화제에서 호평받았음에도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시그래스'(매러디스 하마브라운), '예언'(발로지) 등 작품에 주목했다.
- 서경식 특별 프로그램은 어떻게 구성했나.
생전 디아스포라영화제를 아끼고 해마다 찾았던 서 선생님의 추모 의미를 담았다. 지난해 11월 일본에 가서 서경식 선생님과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로 했다. 가칭 '서경식의 극장전'으로, 서 선생님이 매년 2~3편의 작품을 골라 함께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했다.
3년치 영화 6편도 이미 선정했는데, 다음 달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면서 '목록'만 남았다. 서 선생님이 그 작품을 왜 선정했는지 그 의중을 파악할 수 있는 한국의 '제자들'을 모아 작품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 단편 섹션 출품작이 역대 최다인 이유는.
단편 출품작은 656편으로 역대 가장 많았다. 12년간 이어진 영화제의 위상이 국제적으로 높아졌다는 게 느껴진다. 또 한편으로는 디아스포라 이슈가 이젠 창작자들의 삶의 경계 안으로 들어온 이슈가 된 상황이다. 특히 올해 그런 경향이 많았는데, 한국에 유학 온 외국 학생이나 한국에 이주해 살면서 영화 제작에 참여하는 경우다.
- 주목할 만한 단편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유학 중인 콜롬비아 출신 감독의 '거북이', 베니스영화제에서 상영됐던 '바다 소금', 베를린영화제 등에서 소개된 '여름의 아이들' 등이다.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소개된 작품의 감독들이 직접 디아스포라영화제에 출품 신청한 경우가 잇따라 조금 놀랐다.
- 이번 영화제의 새로운 점은.
'보더리스 시네마'(Borderless cinema)란 프로그램을 신설했다. 올해 단편 출품작 중에는 현대미술 작가들의 비주얼아트 혹은 비디오아트 작업도 많다. 미술가들의 작품을 따로 모아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전시를 하는 프로그램이다. 영화와 미술의 경계를 뛰어넘는다는 취지다.
- 올해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디아스포라영화제는 누구나 환대하고, 누구든 차별하지 않으며, 혐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디아스포라 하면 다소 무겁고 심각한 이야기의 영화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막상 영화제에 와 보면 굉장히 즐거운 이벤트가 많다. 올해 '시네마 피크닉' 섹션에선 스파이더맨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도 상영하는데, 우주를 배경으로 시공간을 초월하는 히어로물 역시 디아스포라의 감각과 다르지 않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