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6일까지 동구 만석동 우리미술관서 개최

 

유동현 전 인천시립박물관장의 기록

한국전쟁 피란민 살던 산동네 ‘헐떡고개’

재개발로 사라진 정겨운 골목 풍경 담아

잡지 보는듯 펼쳐지는 전시 구성 돋보여

유동현 作 헐떡고개. 2024.5.8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유동현 作 헐떡고개. 2024.5.8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지금은 주택 재개발 사업으로 사라진 인천 동구 송림6동 일대의 기억을 사진에 담은 전시 ‘막; 다른 골목’이 동구 만석동 우리미술관에서 열렸다. 유동현 전 인천시립박물관장이 촬영하고, 제목과 이야기를 덧붙인 사진들이다.

송림6동은 한국전쟁 피난민들이 모여 살던 산동네다. 동네를 관통하는 고개 하나가 있는데, 동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헐떡고개’라 불렀다. 전시 부제가 ‘송림동 헐떡고개 이야기’인 이유다.

전시장 입구 쪽에 걸린 높디 높은 헐떡고개를 오르고 있는 한 할머니의 사진이 이번 전시의 핵심 메시지를 보여준다. 이 할머니는 고갯길을 천천히 오르다 힘들면 길 옆 계단으로 빠져 잠시 앉아서 쉬다 다시 오르고, 또 힘들면 다시 계단으로 가 앉아 쉬면서, 그야말로 헐떡대며 고개를 넘었다고 한다.

유동현 作 송림6동 전경. 2024.5.8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유동현 作 송림6동 전경. 2024.5.8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옛 송림6동의 온전한 모습을 담은 전경 사진조차 이젠 희귀해졌다. 전경 사진에선 헐떡고개 꼭대기에 있던 천광성결교회을 찾으면 옛 동네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다. 송림6동은 아니지만 웅장했던 선인체육관(일명 맘모스체육관)이 ‘신스틸러’로 등장한다.

작가의 시선은 골목길과 삶터로 들어간다. 대문 위에 작은 꽃밭을 만들던 할아버지, 조그마한 자투리 공간이면 어김없이 볼 수 있던 고추 말리는 풍경이 정겹다. 재개발 사업이 본격화하면서 생긴 빈집들에 들어가 보니 유물이 된 연탄보일러, 새집에선 쓰일 수 없는 연탄, 창호지 창문 같은 1960~1970년대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우리미술관 사진전 ‘막; 다른 골목’ 전시장 모습. 2024.5.8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우리미술관 사진전 ‘막; 다른 골목’ 전시장 모습. 2024.5.8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유동현 전 관장은 “나는 사진 작가가 아니다”라고 늘 얘기하지만, 2003년 디지털 카메라를 구매한 직후부터 20년 동안 인천 구도심 골목을 누비며 기록을 남겼다. 이번 전시도 20년 가까운 송림6동의 세월이 담겼다. 사진을 남길 골목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 고민이라고 한다.

잡지를 펼쳐 보는 것 같은 전시 구성은 또 다른 재미다. 고추 말리기 풍경 사진에는 실물 고추를, 대추나무에서 대추를 따는 사진은 실물 대추를, 연탄을 쌓은 풍경에선 실물 연탄을 함께 전시했다. 전시장 위에는 전깃줄과 빨래를 넣어 놓은 풍경을 재현했다.

우리미술관 사진전 ‘막; 다른 골목’ 전시장 모습. 2024.5.8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우리미술관 사진전 ‘막; 다른 골목’ 전시장 모습. 2024.5.8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인천시 소식지 ‘굿모닝인천’ 편집장 20년 경력답게 사진 제목이 재치 있다. 낡은 빈집 안에 걸린 추억의 청춘스타 맥 라이언 포스터가 비뚤어진 채 걸린 사진 제목은 ‘빈방에서 맥 풀린 맥라이언’이다. 전시 제목은 ‘개성이 마구 다른 골목’ 또는 ‘사라지는 와중의 막다른 골목’이란 중의적 표현이다.

유동현 전 관장은 “피난민과 빈민들이 헐떡거리며 모여 살았던 인천의 마지막 공간”이라며 “사라지고 있는 옛 고개, 골목길의 기억을 계속 기록으로 남길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6월16일까지다.

유동현 作 ‘빈방에서 맥 풀린 맥라이언’. 2024.5.8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유동현 作 ‘빈방에서 맥 풀린 맥라이언’. 2024.5.8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