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불(掛佛)은 불교 의식에 쓰이는 불화로서 족자처럼 걸도록 제작된 초대형 그림이다. 망자를 위한 천도재와 영산재, 생전에 왕생극락을 발원하는 예수재 그리고 그 외에 법당 밖에서 열리는 야외법회 때 내걸리는 그림이 바로 괘불이다. 이 중에서 영산재는 국가무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된 불교의식으로 태고종에서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바, 망자를 위한 천도재의 하나로 석가모니불이 영취산에서 행한 영산회상을 재현한 불교의식이다. 이를 '영산작법'이라고도 한다.
임진왜란 이후 1945년 광복 직전까지 제작된 괘불은 현재 117점이 현전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서 54점이 보물로 지정돼 있다. 현전하는 괘불 중에서 가장 오래된 작품은 나주 죽림사 '세존괘불도'로 1622년에 제작됐으며 보물 제1279호로 지정돼 있다. 괘불도는 보통 죽림사 괘불처럼 석가세존 등 한 명의 불보살상을 그린 '독존도', 여러 부처와 존자들을 그린 '다불도'와 '다존도', 수많은 보살과 나한과 천신 등을 그린 '군도'가 있다.
이 중에서 죽림사 괘불은 석가세존만을 그린 '독존도'인데, 이 불화는 데리다가 제시하는 해체철학의 핵심 개념인 '파레르곤(parergon)'의 독법과 딱 들어맞는다. 통상 우리는 사물이나 사건 또는 인물을 볼 때 자기의 관점, 이른바 프레임을 가지고 보게 된다. 이처럼 사고의 테두리와 한계를 갖는다는 것은 관점의 협소함과 편견을 유발하게 된다. 데리다의 '파레르곤'에 의하면, 어떤 작품이든 작품을 둘러싼 액자와 테두리가 어떠한가에 따라서 작품에 대한 느낌과 인식이 달라지게 된다고 한다. 작품을 한정 짓는 액자와 같은 테두리를 치워버리면 작품과 사물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죽림사 괘불 석가세존은 독존도로서 법회에 참여한 그림 밖의 사람들 모두를 불화의 일원으로 참여시키는 의미가 있다.
반면, 이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진천 영수사 괘불'은 최고 걸작 중의 하나로 현전하는 괘불 중 가장 많은 140명의 인물이 등장하며, 화기(畵記)에 161명의 시주자 명단이 들어가 있다. 높이 919㎝, 너비 57.5㎝, 무게 76㎏에 이르는 큰 작품이다. 내일 부처님오신날에는 가족과 함께 이런 우리 고유의 불교문화재를 감상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듯하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