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삼체' 시즌1에서 중국 과학자 예원제는 "우리 문명은 더 이상 스스로 자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며 외계문명인 삼체를 지구로 초청한다. 하지만 구원자 삼체는 "우리는 거짓말쟁이와 공존할 수 없다"며 인류를 박멸해야 할 벌레로 규정한다. 일본 영화 '기생수'에서 외계생명체 '미기(오른쪽이)'는 주인공에게 말한다. "신이치, 악마에 대해 찾아봤는데 그에 가장 가까운 건 역시 인간인 것 같아."
탐욕스러운 인류 문명에 대한 비판적 담론으로 허구의 개연성을 획득하는 방식의 전개는 공상과학 창작물의 흔한 작법이다. 창작물에서 외계 생명체와 쌍벽을 이루는 인류의 적이 '인공지능(AI)'이다. 1984년 개봉한 '터미네이터'의 서사는 인공지능 스카이넷이 인류를 적으로 간주해 핵전쟁을 일으키면서 시작된다.
외계문명 삼체와 외계생물 기생수는 아직 공상의 영역에 갇혀있는 반면 AI는 현실에서 작동중이다. 인공지능이 인공(人工)의 영역을 벗어나 초월적 지능으로 독립할 가능성은 상상이 아닌 실제 상황이 됐다. 챗GPT 개발사 오픈AI가 13일 새 모델 'GPT-4o'를 공개하자, 인류가 제2의 '오펜하이머의 순간'에 직면했다는 우려와 반론이 들끓는 배경이다.
'GPT-4o'의 'o'는 모든 것이라 '옴니'(omni)를 의미한단다. 보고, 듣고, 말하는 수준이 인간과 거의 같다고 한다. 사람의 감정을 느끼고 주변 상황을 기억하며 농담과 감탄사까지 구사한단다. 오픈AI 대표 샘 올트만이 인간과 AI가 연인으로 등장한 영화 '허'(HER)를 떠올린 것도 무리가 아니지 싶다. AI끼리 소통하며 스스로 진화할 수도 있다니 놀랍다.
AI가 발전할수록 인류 문명은 혼돈에 빠질 듯하다. AI 등장으로 인문학 분야의 직업들이 사라지고, AI가 정치·경제·사회의 주역이 된다면 인류문명의 본질이 모호해진다. 인류 대다수가 영화처럼 AI와 노닥이는 동안, 악당들은 무인전쟁과 대형범죄에 악용해 전지구적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최악은 예상대로 AI가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순간이다. AI는 인류의 운명을 심판할 '염라지능'이 된다.
"두려움이 없으면 멸종으로 이어진다. 인류는 다시 두려움을 배워야 한다." 삼체문명의 전령인 소폰의 경고다. 드라마 대사이지만 현실적인 경고로 새길 만큼 의미심장하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