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여파 5년만에 체육관 문닫아
사범 그만두고 직장 적응 핑계 삼아
수련도 게을러져… 제자들 보기 민망
선생 자리에서 내려오고 도복 물려줘


'손에 피를 묻히다'라는 관용구가 있듯이 대야에 손을 씻으며 그 세월 동안의 죄과와 피값을 흘려보내고 그 바닥을 뜨는 것으로, 강호한정(江湖閑情)과 평화를 바라는 무림인들에게는 하나의 꿈과 같은 마무리다. 그러려면 무공은 바라는 만큼의 성취를 이뤄야 하고 그간 악당들을 물리치는 수많은 전투 속에서도 자신은 목숨을 부지하고 있어야 하며 틈틈이 가르친 제자는 어느새 청출어람(靑出於藍)하여 스승을 뛰어넘어야 한다. 그리하여 끝끝내 더 노력하여 얻어낼 성취도 없고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는 이미 죽고 되갚아야 할 원한도 대부분 갚아주었으며 목숨 바쳐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새로운 원한을 만들 만큼의 혈기도 쇠진하게 되면 어디 방짜기술 좋은 놋점에 기별이라도 보내 손을 씻을 놋대야라도 하나 주문하여야 하는 때가 이르는 법이다.
얼마전 주짓수 체육관 제자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제자들이 운동을 하는 곳을 그동안 좀 뜸하게 방문했는데, 이번 스승의 날을 앞두고 한번 와달라는 소식이었다. 입시학원 국어강사 생활을 하며 자본주의의 모순 속에서 깊어가는 번뇌를 좀 잊어볼까 하여 배운 외국무술이 어느덧 수련한 지 10년이 넘어서 체육관을 차렸고, 마침 차리고 몇년 안되어 코로나19가 창궐을 하여 몇차례 대출로 지싯지싯 버티다가 내 손으로 블랙벨트를 매어주마던 제자들과의 약속도 지키지 못한 채 5년만에 문을 닫고만 터였다. 폐업하고 첫 일년은 후배 체육관에서 사범 일을 하며 꾸준히 주짓수를 수련했지만 그후 사범 일도 그만두고 인천공항에 취직하여서는 직장 적응에 매진해야 한다는 말을 핑계 삼아 근 일년을 한달에 한두번 하는둥 마는둥 게으르게 주짓수를 했다. 그리고 가끔 제자들을 찾아가 같이 운동을 하고 승급도 시켜주었다. 제자들은 체육관이 문을 닫자 흩어지지 않고 가까운 곳에 공간을 얻어 동아리 형식으로 계속 서로의 운동 파트너가 되어주고 있었다. 늘 지켜봐 주는 선생이 없으니 출석카드를 만들어 자신의 출석을 스스로 관리하며 성실의 근거를 마련하였다.
내겐 원 없이 10년 이상 수련한 운동이고 체육관까지 운영하다가 폐업까지 하였기에 이제 미련 없이 다 내려놓고 취미 삼아 좋아하는 운동을 하면 되리라 생각했지만, 주짓수를 예전처럼 꾸준히 수련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가끔 나타나 스승이라며 인사받기엔 제자들 보기에 민망했다. 그래서 칼 부러진 김에 금분세수한다고, 가서 제자들에게 뜻을 고하고 양해를 구해 선생의 자리에서 내려오기로 했다. 가지고 있던 도복들도 대부분 동아리 대여 도복으로 삼으라고 물려주고 앞으로는 취미인으로서 가끔 하고 싶을 때 찾아오겠노라고 말했다.
좋은 스승이란 뭘까. 다른 분야에서야 잘 모르겠지만 주짓수에서라면 선생이라고 뒤로 빠져서 운동 안 하고 권위만 세우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매일 제자들과 함께 스파링하고 제자들이 돌아가고 나면 기술을 연구하고 연습하여 제자들에게 풍성한 커리큘럼을 제공하는 것이 좋은 선생이요 스승일 것이다. 그리고 제자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그걸 유지하고 지켜나가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다. 그것에 한계를 느낀다면 선생의 자리에서 물러나 함께 즐기는 동료로서의 자리에 서는 것이 맞는 일일 것이다. 내가 가장 한계를 느낀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니 부끄러움에 대해서였던 것 같다. 함께 울고 웃고 땀 흘렸던 공간을 지켜내지 못한 부끄러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나태해져서 강인하고 꿋꿋한 모습의 본을 보여주지 못한 부끄러움. 시간이 흐르고 그로부터 몇 해가 지났지만 아직도 제자들 앞에서 스스로 내내 부끄럽다. 부끄러움 앞에서 스스로를 성찰하지 않고 자꾸 성을 내거나 권위를 더 내세워서 그때그때 모면하려고 하면 결국은 사람들도 떠나고 공간도 지키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게 어디 체육관뿐이겠는가.
/이원석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