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지칭하는 학명은 '호모'로 시작한다. 인간의 고유한 특징 중 하나는 언어적 존재라는 점이며 이와 관련된 학명이 많다. 문법적 인간은 호모 그라마티쿠스, 이야기하는 인간은 호모 나랜스, 말하는 인간은 호모 로쿠엔스라 한다. 언어를 분석하고 어원을 밝히는 것은 언어적 존재인 인간은 물론 인간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한국어도 다양한 민족과 문화와 접촉하면서 형성돼 온 국제어이며 다문화의 산물이다. 가령 결혼으로 맺어진 양가 부모를 사돈(査頓)이라 하는데, 만주어로는 '사둔'이라 하고 몽골어로는 '사든'이라 한다. 이런 말들은 고려 고종 18년(1231) 이후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소주는 증류주로서 아랍의 명의(名醫) 아비케니가 발명했는데 이것이 원나라를 거쳐 고려로 들어왔으며, 임금의 밥상을 가리키는 수라 역시 몽골어 '술런'에서 나왔다. 사냥 매에 다는 꼬리표를 가리키는 시치미를 비롯해서 족두리 역시 원나라에서 사용된 고고리(古古里)에서 나온 말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 고유어로 알고 있는 말의 상당수가 한자어의 변용인 경우도 있다. 가령 사냥은 산행(山行)에서, 배추는 한자어 백채(白菜)에서, 김치는 침채(沈菜)가 '딤채'로 그 '딤채'가 다시 변한 말이며, 겨냥은 한 물건의 견본을 뜻하는 견양(見樣)에서, 상추는 생채(生菜)에서, 생쥐는 사향(麝香)쥐에서, 사랑은 생각하고 헤아린다는 사량(思量)에서, 그리고 서랍은 설합(舌盒)에서 나온 말이다.
병자호란을 거치며 들어온 말도 있는데, 후레자식은 호노자식(胡奴子息) 곧 오랑캐 자식이란 뜻이며, 화냥년은 청에 끌려갔다 고향으로 돌아온 여자란 뜻의 환향녀(還鄕女)가 변한 말이다. 참고로 호주머니는 청나라 복식으로 본래 우리 전통 한복에는 주머니가 없었다고 한다.
지난 60년간 사용돼 왔던 일본식 용어인 문화재(文化財)가 '국가 유산'으로 바뀐다. 이에 따라 17일 문화재청이 '국가유산청'으로 개명됐다. 확실하지 않고 흐리멍덩하다는 말인 '흐지부지'는 한자어 '휘지비지(諱之秘之)에서 나왔는데, 이름만 바꾼 채 매사 흐지부지 넘어가지 말고 이번 기회에 숭례문을 국보 1호로 지정한 일제강점기의 분류체계와 그 잔재인 국보 지정 번호부터 다부지게 고쳐나갔으면 좋겠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