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 와중 중국의 경제정책 위협적
저가 공세에 무너지는 사업·기업들 속출
싼 제품 반갑지만 경제보복땐 감당 못해
지금이야말로 '제2의 물산장려운동'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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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
민족주의는 모든 것을 자민족 중심으로 생각하고 우선에 두며, 이를 유지하려는 이념 내지 그 활동이라 할 수 있다. 베네딕스 앤더슨은 민족이란 상상된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 곧 언어가 만든 허구적 구성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생물학적 민족은 오래전부터 있었을지 몰라도 정치적·역사적 개념으로서의 민족은 장기간의 학습과 인쇄술의 발전과 문학 작품 등 자국어 출판물의 보급에 의해 형성된 언어적 구성물이라는 것이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지금 현시점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까지 민족주의가 어떤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는지 경험하고 있기에 베네딕트 앤더슨의 주장이 수긍이 간다. 민족이 상상된 공동체로서 언어가 만든 허구라는 앤더슨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다 수용하기는 어렵다. 민족은 언어적 구성물 이상의 현실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며, 제국주의 시대에서 민족주의는 진보적 이념이자 저항의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도 정치 지도자들과 국가 이성이 끊임없이 민족주의를 부추기고 있고, 이로 인해 지구촌의 평화가 항상적으로 위협받고 있기에 앤더슨의 주장은 한편으로 여전히 유효하며 큰 설득력을 유지하고 있다.

미·중 갈등의 와중에 최근 중국이 보여주는 경제 정책과 행보는 매우 위협적이다. 중국에서 불고 있는 경제·민족주의로 화웨이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여주고 있는가 하면, 중국의 저가 공세에 무너지는 사업과 기업들도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태양광 패널은 중국의 저가 공세에 국내외 기업들이 맥을 쓰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B2C기업이자 이커머스 플랫폼인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의 공세에 쿠팡의 매출이 떨어지고 있고 그 빈자리를 중국산 제품들이 점령하고 있다.

요즘 같은 인플레이션과 고물가가 겹친 시대 돈 없는 시민들과 젊은 소비자들에게 값싼 중국 제품은 가뭄의 단비요, 매우 매력적이다. 영국의 살인적인 전기료와 빅맥 햄버거가 18달러(한화 2만5천원)나 되는 미국의 물가 등 세계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일견 중국의 값싼 제품은 반갑고 감사하다. 세계가 겪고 있는 지금의 고물가는 물가가 오른 게 아니라 달러화를 너무 많이 풀어서 화폐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에 생긴 부작용이며, 여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가성비 좋은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사용하지 못해 생겨난 에너지 가격 상승 등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중국이 국가 재정의 출혈을 감수하면서 자국 기업을 지원하고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하나는 경제 활성화와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저가 공세를 통해 경쟁국의 기업을 무너뜨리고 장기적으로는 중국의 독과점을 이루려는 저의가 숨어있는 것이다. 가성비 높은 중국 제품이 지금 당장에는 달콤할지 모르지만, 장차 이것이 미래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상상하기조차 두렵다. 최근 미국은 중국산 전기차에 대해 100% 보복 관세를 부과하며 견제에 나서고 있지만, 중국 의존도가 높은 우리 정부로서는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의 공세에도 뾰족한 대책을 내놓기도 힘들다. 중국의 경제 보복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자국 경제 보호를 위해 미국의 슈퍼 301조 같은 유사 법안도 준비해 놓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 정책이 있다면, 중국은 대책이 있다는 웃픈 말도 나올 법하다.

이런 상황에서 떠오르는 역사적 사건이 있다. 1920년대 일본의 회사령에 맞서 '조선 사람이 만든 것을 조선 사람이 쓰자'는 '물산장려운동'이 그러하다. '물산장려운동'을 두고 무저항 항일운동으로, 민족 기업 육성 운동으로, 또 조선인 자본가들의 자본축적 운동으로 보는 등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지금이야말로 국내 기업을 애용하는 '제2의 물산장려운동'이 필요하다. 정부가 나서면 외교 문제가 되니 시민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나서야 한다. 중국에 애국소비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국산품 애용이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지금의 역사적 단계에서 민족주의 극복은 SF이거나 인문사회과학 서적에나 나오는 요원한 얘기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