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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이 위태롭다. 베를린 시장이 최근 도쿄에서 일본 외무상을 만나 "변화가 중요하다. 베를린 소녀상을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겠다"고 밝히면서 또다시 철거 논란이 일고 있다. 카이 베그너 시장은 "여성에 대한 폭력에 반대하는 기념물은 찬성하지만 더 이상 일방적 표현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관할 구청·연방정부를 포함한 모든 관련 당사자와 대화 중이며 독일 주재 일본대사도 논의에 참여시키겠다"고 말했다 전해진다. 베를린·도쿄 자매결연 30주년 '선물용 망언'인가. 역사에 죄를 지은 전쟁범죄 가해국인 일본의 일방적인 입장을 두둔하고 대변한 꼴이다.

베를린 소녀상은 지난 2020년 9월 베를린 미테구 비르켄가 공공부지에 설치됐다. 독일 극우주의 테러 규탄·여성의 날 기념뿐 아니라 아시아계 인종차별 규탄·수요시위 기념 등 다양한 주제의 행사가 펼쳐지는 상징적인 장소가 됐다. 하지만 독일 수도에서 소녀상이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일은 순탄치 않다. 설치 직후인 2020년 10월 관할 미테구청이 철거를 명령했지만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의 가처분 신청으로 우여곡절 끝에 보류됐다. 이후 미테구의회는 여러 차례 존치 결의안을 채택했고, 2022년 설치 허가를 2년 연장해 올해 9월 28일 만료를 앞두고 있다.

일본정부는 베를린 소녀상 존치를 연장해야 할 시점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철거를 압박하고 부추긴다. 참으로 집요하다. 지난 2022년 4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일본을 방문한 올라프 숄츠 총리에게 "베를린 소녀상이 계속 설치돼 있는 것은 유감"이라며 대놓고 철거를 요구한 바 있다. 일본의 전방위적 압박에 실제로 2023년 3월에는 독일 헤센주 카셀주립대 캠퍼스에 총학생회 주도로 설치됐던 소녀상이 기습 철거되기도 했다. 학생들은 "대학이 일본정부의 정치적 압력에 굴복한 것 아니냐"고 강력 규탄했었다.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와 정의기억연대 등이 지난 22일 회견을 열고 173개 시민단체 및 1천861명의 시민이 서명한 항의서한을 주한 독일대사관에 전달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지난 19일 "민간차원에서 이뤄지는 활동에 한일 정부가 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일본정부의 끊임없는 도발에 반해 우리 정부의 태도는 굴욕적이다. 역사의 아픔과 국민을 바라봐야 할 정부는 어디를 쳐다보고 있나.

/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