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 오면 학교에 가 있는 손자한테 전화가 와요. 혹시 집에 물 찼냐고….”
지난 24일 인천 부평구 십정동에서 만난 윤귀자(71)씨는 16년째 반지하 주택에서 남편과 딸, 두 손자와 함께 살고 있다. 매년 돌아오는 여름 장마철이 두렵다는 윤씨는 최근 폭우를 대비해 물을 퍼내는 배수펌프를 구입하고, 비가 들이치지 않게 창문에 장판 조각을 덧대어 붙이기도 했다. 그는 “비만 오면 바닥에 물이 차고 화장실과 주방 싱크대 배수구에서 물이 역류한다”며 “지난해 여름에도 이웃들이 도와줘 집에 찬 물을 퍼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윤씨가 사는 부평구 십정동 장수로 일원은 인천시가 정한 ‘상습 침수구역’이다. 인천시는 미추홀구 주안역 주변, 동구 송현동 중앙시장 인근 등 31개 구역(380만6천351㎡)을 상습 침수구역으로 정해 관리하고 있다.
인천시는 지난 2018년부터 최근까지 침수 피해를 겪은 가구와 1층·반지하 등 저층 주택 1천765가구에 물막이판(차수판) 설치를 지원했다. 이는 인천시 전체 반지하 주택(2만4천207가구)의 7.2%에 불과하다. 사정이 이런 데도 인천시는 올해 침수방지시설 지원사업 예산을 지난해보다 44%나 줄인 18억원을 편성했다.
윤씨 등 인근 주민들은 대부분 인천시가 이러한 시설을 지원해 주고 있는 줄도 몰랐다.
반지하 주택에 세를 내주고 있는 전영순(76)씨는 “매년 장마철마다 세입자들이 집에 물이 찼다고 아우성”이라며 “인천시에서 무료로 침수를 막기 위한 시설을 설치해주는 것을 알았다면 당장 신청했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개폐식 방범창 설치 사업에 대한 예산도 지난해(약 9억원)보다 3억원가량 줄었다. 개폐식 방범창은 일반 방범창과 달리 버튼을 누르면 방범창이 열려 폭우, 화재 등 위급 상황에서 출입문으로 대피할 수 없을 때 창문으로 대피할 수 있도록 하는 장비다. 지난 2022년 여름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 살던 일가족은 집 안에 물이 차 창문으로 대피하려 했지만 방범창이 열리지 않아 목숨을 잃었다.
인천시 자연재난과 관계자는 “군·구 홈페이지에 홍보 포스터를 올리는 등 침수방지시설 지원사업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신청이 적어 편성한 예산이 남다보니 올해 예산을 줄인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교통부가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등에 사는 이들을 임대주택으로 이주하도록 돕는 ‘주거 상향 사업’도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2022년부터 최근까지 인천 지역에서 임대주택으로 이사를 한 반지하 가구는 278가구뿐이다.
인천시 주택정책과 관계자는 “보증금을 낼 여력이 없거나 주택이 좁아 이사를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