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관·극작가 대본 수정 이야기
초연된 1996년 日서 상당한 반향
일본 사회가 1940년 체제 흔적
다 지우지 못한 표지 아닐까
일본에는 1940년 체제라는 말이 있다.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국가총동원 체제를 말한다. 중일전쟁 이후 일제의 군국주의가 극에 달하며 태평양전쟁을 준비하는 1940년의 일본은 전쟁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시기이다. 국가가 산업이나 금융뿐만 아니라 언론을 통제하며 쌀도 배급하던 때다. 검열관이 "전국민이 하나로 뭉쳐서 현재의 난국을 헤쳐나가도 모자랄 판에 코미디를 볼 때입니까"라고 말하는 배경이다.
아들과 엄마가 나눈 4년간의 편지를 묶은 '소년기'(하타노 이소코)에는 당시 일본 사회의 모습이 담겨 있다. "선생님 말씀으로는 전쟁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고 합니다. 친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저하지 않고 적진으로 뛰어들 수 있는 사람이 부럽습니다." 전선으로 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한 전쟁 기계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헤아리기엔 아직 어린 이치로가 중학교 1학년 때 쓴 편지의 한 대목이다.
연극은 화요일에 시작해 화요일에 끝난다. 첫째 날. 검열관은 '희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검열하며 "도대체 이딴 걸로 웃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가 없다"라고 말한다. 검열관의 말은 명령하는 언어이다. 이런 식이다. '희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복수를 기본으로 하는 '햄릿'으로 그 설정을 바꾸라고 강요한다. 그것도 내일 아침까지. 국가총동원 체제에 따라 공연을 금지하거나 대본 수정을 명령하는 검열관의 언어에는 코미디와 웃음이 없다.
셋째 날. 극작가의 말은 웃음의 언어이다. 그는 반복하는 대본 수정의 명령에도 공연을 포기할 수 없다. 또한 웃음도 포기할 수 없다. 이런 식이다. "대본 어딘가에 '천황폐하만세'라는 대사를 넣으십시오"라고 검열관이 요구하자 바로 수정한다. '희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희극 햄릿과 줄리엣'으로 바꾼 마당에 무엇인들 못 할까. 햄릿이 천황폐하만세를 외친다. 그때 무대 위에 말이 등장한다. 천황폐하만세는 말 이름이었다.
다섯째 날. 이제 둘은 함께 대본을 고친다. 넷째 날을 지나며 둘의 관계에 변화가 생기더니 검열관은 어느덧 "이런 건 어때?"라거나 "갑자기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서"라며 대본 수정에 참여하고 있다. 장면 연습 중에 즉흥적으로 대사를 뱉기도 한다.
마지막 날. "여든세 번 웃었습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검열관에게 큰 변화가 생겼다. 하지만 극작가는 이틀 후 입대하라는 영장을 받은 사실을 뒤늦게 검열관에게 알린다. 이에 검열관은 꼭 살아서 돌아오라고 말한다. 그때까지 대본을 잘 보관하고 있을 테니 살아 돌아와서 직접 공연을 올리라고 말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국가를 위해 죽겠다는 말 입에 담지도 마." 입대가 곧 전사를 뜻하는 시기이다.
반칠환 시인은 '웃음의 힘'에서 '넝쿨장미가 담을 넘고 있다/현행범이다/활짝 웃는다/아무도 잡을 생각 않고 따라 웃는다/왜 꽃의 월담은 죄가 아닌가?'라고 노래했다. 웃음과 위반은 그렇게 연결되어 있다. 금지의 경계선을 환한 미소로 넘어가는 넝쿨장미라니. 장미의 웃음은 금지를 금지하는 위반의 상상력이다.
연극 '웃음의 대학'은 웃음으로 견고하고 딱딱한 모든 것이 녹아내리기를 갈망하는 극작가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웃음에는 "공연 허가를 드릴 수 없"다던 검열관의 입에서 "국가를 위해 죽겠다는 말 입에 담지 말라"고 말하게 하는 힘이 있다. 초연된 1996년 일본에서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어쩌면 그 무렵의 일본 사회가 1940년 체제의 흔적을 다 지우지 못한 표지가 아닐까. 그렇다면 2008년 이후 공연을 거듭하고 있는 한국은 어떠한가. 장미와 웃음의 상상력이 필요한 건 아닌가. 그렇다면, 장미에게 권력을. 또한 웃음에게 권력을.
/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