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교육개혁 현상의 허상 허우적
국가 공동체 이끌어가는 규범과
정의 사라질때 파멸은 시작된다
민중의 맹목적 진영논리 가속화
태도 안 변하면 분열은 현실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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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환 가톨릭대 명예교수
한 순간 나라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성과에 취해 있다가 돌아보니 온 나라가 혼돈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고 있다. 1876년 개항으로 근대 체제를 강제받은 한국은 이후 극심한 혼란에 빠져 폭력과 야만이 일상화되었으며, 민중의 삶은 극한으로 내몰렸다.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의 죽음과도 같았던 삶은 차지하고라도, 이후 남북이 갈라져 싸웠던 잔혹한 전쟁, 군부독제에서의 일상적인 폭력을 돌아보면 그 기나긴 질곡을 직시하기가 너무도 고통스럽다. 그 시간을 감내하고 이겨내면서 겨우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었다는 생각도 잠시 어느 순간 다시금 그 폭력과 고통이 일상적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게 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한 국가가 올바르게 유지되려면 그 사회 체제의 합리성과 함께, 이를 뒷받침하는 민중의 사회적 규범이 확립되어야 한다. 사회 체제의 타당성은 그것을 근거짓는 규범에 대한 민중의 사회적 합의와 동의 없이는 결코 가능하지 않다. 우리 사회는 체제와 제도적 합리성은 확립했지만 그를 토대짓는 규범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기껏 소비와 성과 중심의 사회, 나아가 정치적 자유주의 정도가 이런 규범적 토대를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런 이념은 이미 실패했으며, 사회철학적 관점에서도 그 맹목성이 온전히 드러났다. 소비주의와 성과주의는 무이념적 자본주의의 기능적 현상일 뿐이다. 정치적 자유주의 역시 미국을 비롯한 서구 사회에서 실패로 판정된 이념에 불과하다. 그 자리를 대신할 규범을 우리는 어떻게 확립하고 있는가. 조선은 적어도 성리학적 규범을 통해 500여 년의 시간을 유지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규범이 파산했을 때, 또 그를 대신할 규범과 체제를 만드는 데 실패했을 때 역사에서 보는 극심한 혼란과 민중의 죽음과도 같은 고통이 이어졌다. 누구의 실패인가? 그 사회의 기득권을 소유한 집단이 공동체 정신을 철저히 배신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정부는 그나마 의료개혁과 교육개혁을 추동하고 있다. 그러나 실패가 예견된 까닭은 그 안에 국가 공동체를 유지하고 발전시킬 규범적 논의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의료개혁은 1천509명에 달하는 의대입학정원 증원이라는 허상으로 가려졌다. 공공의료의 말살, 비급여진료 확산과 전공의의 노동력 착취를 통해 유지되는 의료체제에 대한 개혁은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그 가운데 이른바 '빅 5'라는 대형병원은 연간 2조원에 육박하는 매출을 올리고 있으며, 민영의료 보험시장의 확대를 통해 의료기업들은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의료 산업화, 의료 시장화는 결코 의료 개혁의 답이 될 수 없다.

교육 개혁의 맹목은 의료 개혁에 비할 수 없을 정도다. 이 정부는 무전공 입학 확대 등 대학혁신지원 사업을 통한 구조 개혁 정도를 추진하고 있지만, 정작 고질적인 대학 입시와 대학 제도 문제는 거론도 하지 않는다. 그 정점에는 학벌주의와 일면적 능력주의가 똬리를 틀고 있다. 한국 교육이 황폐화하고 학문과 교육이 죽어가는 근본 원인이 여기에 있음에도 이 정부는 그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다. 시민들도 그에 대한 인식이 전무하다. 그 가운데 교육은 하염없이 죽어가고 있다. 학문과 연구는 'R&D 예산 카르텔' 따위의 맹목에 묻혀 고사 직전이다. 온 나라가 이념과 규범에 대한 논의 없이 다만 현상의 허상에 허우적거리고 있다. 국가나 사회라는, 또는 우리 삶의 터전인 공동체에 대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없다. 다만 철지난 자유주의나 맹목적 자본의 논리, 소비주의의 허상에 빠져 죽어 가는지도 모르고 있다.

이런 경고가 지나치다고 생각하는가? 풍요와 평화를 누리던 국가가 한 순간의 판단 착오와 안일함으로 이런 폭력이 일상이 되는 경우는 역사에서 너무도 자주 일어난다. 근본 원인은 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한 분열이지만, 파멸은 국가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규범과 정의가 사라질 때 시작된다. 생각 없는 사익집단과 자본의 논리를 맹종하는 사회가 이런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 여기에 민중의 생각 없음과 진영 논리가 가속화되고 있다. 생각 없는 무이념적 집단과 그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이 분열은 현실이 될 것이다.

/신승환 가톨릭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