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자 출소때마다 예산만 줄줄

시군 3년간 누적 20억… 재정 부담

위험 대처 급급, 본질적 해법 요원

거주지 제한 '한국형 제시카법'
위헌 소지 지적에 국회 계류중
"법 통과 돼야" 법무부 손 놓아
"특정 지역 아닌 국가 문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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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자 출소 이후 지자체가 이들을 관리하기 위해 혈세를 낭비하고 있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6일 경찰 관계자들이 연쇄 성폭행범 박병화의 거주지 인근에 설치된 시민안전센터에서 순찰을 돌고 있다. 2024.5.26 /최은성기자 ces7198@kyeongin.com
 

경기지역에서 고위험 성범죄자가 출소할 때마다 거주지 지자체가 투입한 치안 예산이 최근 3년간 누적 20억원대에 이르고 있지만, 성범죄자를 강제 이전시킬 수도 없어 지출 규모는 기약 없이 확대될 전망이다.

지자체들이 한목소리로 법무부에 요구한다는 제도 개선안은 위치정보 공유 등 단기 대응방안에 불과해 누군가는 부담을 떠안아야 할 '폭탄 돌리기' 양상만 반복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폐기 위기에 처한 '한국형 제시카법'만이 만능열쇠처럼 거론되고 있지만, 거주시설 입지 문제나 위헌 논란 등 남은 과제를 두고 후속 논의를 이어가려는 주체는 전무한 실정이다.

■ 성범죄자 받는 순간 혈세 줄줄

26일 경기지역 지자체에 따르면 고위험 성범죄자 거주지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경기지역 지자체들이 투입해 온 세금은 최근 3년간 도합 20억원대에 달한다. 박병화가 수원시 전입 직전 거주했던 화성시는 지난 2022년 11월부터 최근까지 지출한 예산액이 7억1천70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지난 2021년부터 아동성범죄자 조두순이 거주하고 있는 안산시는 연간 5억여원 규모, 도합 십수억원대의 예산을 집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수원시의 지출 규모도 나날이 불어날 전망이다. 현재 유지 중인 조치 외에는 인근 지역민 반발을 해소할 해결책이 없기 때문이다.

시는 향후 청원경찰 추가 채용, 감시 인력 충원 등으로 인건비로만 월 2천만원 이상을 지출할 계획이다. 여기에 관할 수원남부경찰서와 경기남부경찰청 차원의 전담 행정력과 치안 인력도 투입될 예정이다. 시 관계자는 "일단 당장 가능한 조치에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 지자체 제도 개선 요구, 알맹이 없다

경기지역 지자체들은 촉발된 논란을 계기로 법무부에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나섰다. 주된 내용은 성범죄자 거주지 판단 과정에 지자체 의견도 고려돼야 한다는 취지다. 성범죄자가 거주지 이전 검토 과정에서 지자체 의견을 반영하도록 체계를 개편하고, 기존 법무부만 열람 가능하던 전자발찌 위치추적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는 게 지자체들의 입장이다.

수원시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요구안을 경기도시장군수협의회 안건으로 통과시켜 법무부에 전달한다는 방침이다.

연쇄 성폭행범 박병화 거주지 순찰 (12)
성범죄자 출소 이후 지자체가 이들을 관리하기 위해 혈세를 낭비하고 있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6일 경찰 관계자들이 연쇄 성폭행범 박병화의 거주지 인근에 설치된 시민안전센터에서 순찰을 돌고 있다. 2024.5.26 /최은성기자 ces7198@kyeongin.com

그러나 요구안이 본질적인 해결책에 관한 논의는 생략된 채, 성범죄자 위치정보 공유안이나 지자체 사전 통보 및 허가제 마련 등에 그쳐 당장의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한 조처라는 비판도 나온다.

화성시는 2년 전 유사 논란으로 일찍이 법무부에 요구안을 전달했으나, 거절 회신을 받은 바 있다. 화성시 관계자는 "물론 뚜렷한 해법이 도출되기 어렵기에 더 논의돼야 하는 것은 맞지만, 당장 관할구역에 위험이 감지되고 지역민들이 불안해하는 상황에서 치안 강화에 집중해야 하는 것도 지자체의 역할"이라고 했다.

■ 한국형 제시카법 언제까지 방치?

그나마 폐기 위기에 처한 '한국형 제시카법'을 되살리는 것이 장기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일찍이 법안에 제기됐던 지적에 대한 개선안 등은 거론되지 않고 있다. 한국형 제시카법은 고위험 성범죄자 거주지를 국가 지정 시설로 강제하는 법안으로 지난해 10월 입법 예고됐으나 21대 국회 임기 종료를 코앞에 두고도 여전히 계류 중이다.

기피시설로 전락할 수 있는 시설의 입지를 어디로 할지 기준이 불분명한데다, 거주 이전 자유를 침해해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 등으로 인해 법안은 사실상 방치된 상태다.

지자체들은 물론 주무부처인 법무부도 뚜렷한 대책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법무부 관계자는 "시설의 위치나 설치 기준 등에 대해 현재까지 정해진 것이 없다"며 "지자체가 운영하는 특정 시설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법이 통과된 이후에야 시설을 확실히 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고위험 성범죄자 거주지 문제는 해법 논의가 생략된 채 관계기관 간 권한 다툼에 머무르고 있고, 대책 없는 예산 지출만 반복될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장영수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특정 지역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문제로 생각해야 한다"며 "성범죄자 전입으로 인한 지역 사회의 불신을 씻어내기 위해선 감시 강화가 아니라 성충동 억제 약물 투여 검토 등 근본적인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이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산·김지원기자 mountai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