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쇄 성폭행범 박병화가 수원으로 전입신고를 한 지 꼭 2주가 지났다. 주민들의 불안감을 덜기 위해 수원시는 즉각 박병화의 거주지 인근에 방범초소를 세우고 CCTV와 비상벨 등을 추가 설치해 감시 시스템을 대폭 강화했다. 여기에 8천만원의 시 예산이 투입됐다. 박병화와 같은 건물에 거주하는 이웃 주민들에게 지급될 안심물품을 지원하는 예산도 2천만원 가량 책정됐다. 고위험 성범죄자 한 사람의 등장만으로 열흘 만에 1억원이라는 세금이 쓰인 셈이다.
박병화가 지난 2022년 10월 출소한 이후 1년6개월 이상 머물렀던 화성시에서도 최근까지 7억원 넘는 예산이 집행됐다.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이 거주하는 안산시도 십수억원에 달하는 예산이 치안·감시를 목적으로 사용됐다. 예기치 못한 일로 막대한 지자체 예산이 투입되고 있지만, 더 큰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수원시는 청원경찰을 비롯해 감시 인력을 더 충원할 방침이며 여기에 들어가는 인건비만 매달 2천만원에 달할 전망이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도 모자라 기약 없는 혈세 폭풍우가 몰아칠 예정이다.
유일한 입법 대책은 본란이 수차례 지적한 대로 '한국형 제시카법'뿐이다. 한국형 제시카법은 고위험 성범죄자의 거주지를 국가 지정 시설로 강제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으로 지난해 10월 입법예고됐으나, 시설 입지 선정 문제와 거주 이전의 자유 침해 논란 등에 가로막혀 제동이 걸렸다. 21대 국회 임기가 종료되는 29일이면 자동 폐기된다.
형을 마치고 출소한 성범죄자의 거주지 선택권을 지자체가 막을 순 없다. 하지만 시민의 혈세를 비롯한 사회적 비용이 과도하게 투입되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더 이상 지켜만 볼 순 없는 노릇이다. 무엇보다 경제적 논리로 가늠하기 어려운 인근 주민들의 불안감은 더욱 큰 문제다. 박병화의 출소 이후 화성시가 떠안았던 폭탄이 이제는 수원시로 넘어온 형국이다. 고위험 성범죄자의 거주지에서 비롯된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 없이는 이 같은 폭탄 돌리기 양상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 해당 지자체가 감수하고 끝낼 사안이 아니다. 법 제정에 뒤따르는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방점을 찍고 관계 기관들과 당장 머리를 맞대야 한다. 구체적 해법 논의 없이 법무부와 지자체 간 권한 다툼에 급급한 이 순간에도 시민 혈세는 줄줄 새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