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민원인 사이 엇갈린 입장
경기도 실명 삭제 내부 검토 나서
일부는 "근본적 대책 안돼" 지적
악성민원에 시달리던 김포시 공무원 사망 사건을 계기로 지자체 누리집에서 공무원 신상을 비공개하고 있는 지역이 늘고 있지만, 시·군 행정부서를 통해 민원 문제 등을 해결해야 하는 일반 민원인들의 불편도 커지고 있다.
공무원과 일반 민원인들 사이에서 이와 관련한 입장이 엇갈린다.
28일 경기도에 따르면 경기도가 최근 경기도청 공무원 385명을 대상으로 '누리집 신상 비공개'에 대해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93% 가량이 찬성했다. 공무원들은 누리집에 공개된 이름으로 '스토킹형 민원'에 시달리는 것이 고충이라고 토로했다.
한 경기도 공무원은 "정책적인 것이 궁금해서 전화하는 것이 아니라 욕설을 섞은, 비하하는 말로 괴롭히는 특정 민원인이 많다. 실명을 거론하며 협박하는 전화를 반복해 괴로워하는 직원들도 다수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공무원 보호차원에서 타 지자체는 공무원 실명을 없애는 기조가 점점 확산 중이다. 담당 공무원 이름을 지우고, 담당 업무 및 내선번호만 남겨두는 식이다.
도내 31개 지자체 중 14개 지자체는 공무원 이름을 아예 지웠다. 성만 공개하거나, 팀장·과장급 공무원만 이름을 공개하는 곳도 6곳이나 된다. 17개 광역시·도 중에서도 성명을 비공개하는 곳이 경상남도, 경상북도, 인천광역시 등 9곳으로 늘었다. 경기도 역시 실명 삭제를 내부 검토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경기도청공무원노동조합 선거 공약에 '누리집 담당직원 실명 삭제'가 등장했다.
앞서 도는 지난달 12일 오병권 행정1부지사를 단장으로 하는 '경기도 악성민원 대응팀' 회의에서 직원 의견 수렴 및 도민 여론조사를 거쳐 신상공개 범위를 결정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다만 경기도는 공무원 신상공개 문제에 타 지자체보다도 신중하게 접근하겠다는 입장이다.
공무원 신상 비공개가 되레 불편 민원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원인들의 불만도 만만치 않다. 한 민원인은 "시청에 도움을 받으려 전화를 하려 해도 담당자가 누군지 몰라, 전화를 몇번이나 돌려야 한다. 노인이나 사회적 약자가 더 불편이 크다"며 "말로는 시민을 돕는 적극 행정을 한다지만, 극히 일부인 악성민원인 때문에 일반 시민이 느껴야 하는 불편이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실제 이번 달부터 신상을 비공개한 도내 한 지자체의 경우 "공무원인데 왜 이름을 밝히지 않느냐"는 게 새로운 민원으로 떠올랐다.
신상 비공개가 악성민원의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원인이 신상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고, 민원이 접수되면 담당 공무원이 배정되며 신상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경기도 관계자는 "불편 민원이 많아질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해서 신중할 수밖에 없다"며 "현재로서는 행정안전부 지침이 내려오긴 했지만, 상시녹음 가능 등은 법 개정 이후에나 가능한 조치들이다. 도는 29일부터 진행하는 도민 여론조사 결과까지 종합해 신상 공개 범위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영지기자 bbangz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