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거함'으로 오인할 수도
편의시설에 표기 간과 불상사
디자인·사용설명 안내문 등
사용자 편에서 개선할 필요
처음엔 위생배변봉투가 보관함 밖으로 삐져나온 것이라고 순진하게 생각했는데 그건 찰나의 오판이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부러진 나뭇가지로 집게 삼아 보관함 속에서 문제의 배변 봉투를 끄집어냈다. 청소는 익일 아침 이곳에 들를 시니어 공공시설관리도우미들의 몫으로 돌리고.
얼마 전에 공원에서 맨발걷기 중 만난 시니어 한분으로부터 반려견 배변은 일반 쓰레기가 아니고 폐기물이라서 수거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던 터라 수거의 믿음이 확실치 않았지만 그렇더라도 일단 위생배변봉투 보관함에선 빼내어야 했다. 나뭇가지 집게로 비닐 배변봉투를 집을 때 손끝으로 불쾌함이 느껴졌다. 일부는 비닐봉투 밀봉이 느슨하여 배변 냄새까지 나는 것을 보아 투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구나 싶었다.
몇 시간 전, 동네 상가에 가기 위해 이곳을 지나칠 때 인접한 파고라 밑에서 강아지 두 마리를 벤치에 앉혀놓고 휴대전화를 만지작대던 나이든 남자가 스쳐 지나갔다. 그이가 원흉이라고 단정할 순 없지만 그 시간대에 근처에서 반려견과 함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떠올랐던 것이다.
몰지각한 일부 견주 탓에 매너 있는 많은 견주들까지 도매금으로 힐난의 시선을 주게 된다. 공원 동남측 진입구 근처에서 반려견과 산책 중인 여성이 공원에 들어서고 있던 중인 것으로 보였는데 위생배변봉투 보관함 근처에서 얼쩡대는 나를 보았는지 공원으로 들어서지 않은 채 머뭇머뭇 거리고 있었다. 혹시?
그렇게 투기된 배변봉투를 보관함에서 꺼내놓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하니 반려견 견주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끼어들었다.
문제의 반려견 위생배변봉투 보관함은 집 대문 혹은 담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편함과 같은 생김새로 인해 이곳을 반려견 위생배변봉투 '보관함'이 아니라 배변봉투 '수거함'으로 오인했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용의 전달을 분명히 하기 위해 '~보관함'이라 적었지만 이 거치대 어디에도 위생배변봉투 '보관하는 곳'이라는 명시가 없으니, 보관함에 위생배변봉투 없이 비어 있을 경우 배변봉투 수거함으로 일부 견주들이 오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물론 '한 장씩 사용해주세요'라는 문구만 제대로 읽은 견주들이라면 문제도 안 되었겠지만.)
디자인의 관점에서 사용자 행위 중심 디자인(UX 디자인과 UI 디자인)이 낯설지 않은 오늘날 공공기관에서 잘 한다고 만들어놓은 주민 편의시설이 이를 간과하여 생긴 불상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설치한 공공시설물이 사용상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면 디자인과 사용설명 안내문 등등 사용자 편에서 개선책을 내놓을 필요성이 있다.
어정쩡한 디자인과 안내문의 결여로 애먼 견주님들만 나쁜 소행의 잠재적 원흉들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전진삼 건축평론가·'와이드AR'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