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수행평가 과정 교권약화 경험
학부모 요구·민원 대응 어려움 겪어
전교조, 인천시교육청에 대책 요구
# 사례1. 인천 한 고등학교 교사 A씨는 최근 한 드라마를 보고 마음이 무거웠다. 드라마에는 학원 강사가 학교 국어 중간고사 문제를 달리 해석해 틀린 수강생에게 학교에 이의 제기할 것을 권하고, 심지어는 학교에 직접 가서 교사와 면담하는 장면이 담겼다. A씨는 최근 내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실제로 학원들이 학교 시험 문제에 조금이라도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으면 수강생에게 학교에 민원을 제기해 보라고 유도한다며 씁쓸해했다.
# 사례2. 인천의 다른 고등학교 교사 B씨는 벌써 이번 학기 기말고사를 걱정한다. 일과 중에는 수업과 각종 업무로 바빠 퇴근 후 잠을 줄여가며 시험문제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동료 교사로부터 "중간고사에서 상위권 학생이 시험 문제를 틀리자 학부모가 논문 수준의 민원 서류를 제출했고, 문제에 오류가 없었지만 학교가 민원을 걱정해서 재시험을 결정했다"는 얘기를 듣고 '혹시나 시험 문제를 잘못 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지울 수 없다고 토로한다.
인천지역 중등교사들이 중간·기말시험과 수행평가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평가권'을 침해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교권 약화와 교사 정원 축소 등 여러 현안과 얽힌 만큼, 인천시교육청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가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22일까지 인천 중등교사 938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교사 272명(28.9%)이 평가권 침해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교사 292명(31.1%)은 무리한 교원 감축으로 일선 교사들의 수업 시수와 행정 업무가 급격히 늘어나는 등 시험문제 출제 환경도 열악하다고 했다.
교사들이 구체적으로 서술한 평가권 침해 사례로는 '원활한 진학을 위해 시험을 쉽게 출제하라는 학부모의 문자·전화를 받았다' '교과서에 있는 내용임에도 원어민(영어)이 봤을 때 많이 사용되지 않는 표현이라거나 예시 그림이 잘못됐다는 지적을 받았다' '학부모가 지속적으로 민원을 제기하자 관리자와 면담을 하거나 재시험을 치렀다' 등이 있었다.
교사 A씨는 "만점자가 내신 1등급 비율(전체 학생 수의 4%)을 넘었다가는 난이도 조절을 못했다는 원망이 나온다"며 "시험 문제에 오류는 물론이고 민원 자체가 없어야 무사히 시험 기간이 끝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민원이 접수되면 상황을 모면하고자 재시험을 결정하거나, 교사에게 경위서를 제출하라는 학교가 많다"며 "교사들은 이런 민원이 발생했을 때 어느 누구도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전교조 인천지부는 29일 인천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사의 평가권 보호를 위한 대응책 마련을 촉구했다. 기자회견 후에는 평가권 보장을 바라는 인천지역 중등교사 1천717명의 서명부를 인천시교육청 담당 부서에 전달했다.
안봉한 지부장은 "교사의 평가권 보장은 물론, 민원 발생 시 관행적인 재시험이나 학교장의 무분별한 주의·경고를 막을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며 "인천시교육청은 학생 성적 관리 지침을 개정하는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희연기자 khy@kyeongin.com